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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Dec 10. 2024

가는 길이 사악하다

세상에 빛을 지키는 자 vs. 세상에 빛을 끄는 자

영화 <검은 사제들> 중에서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 12번째 보조사제 (강동원 역)는 악령이 깃든 돼지를 죽이기 위해 달린다. 김신부(김윤식 역)가 미리 경고한다.


가는 길이 사악하다.


새가슴 쫄보인 내가 어쩌다 밤에 깨어 한 나라 대통령이 저지른 망국의 발언을 보고 있자니 좀처럼 피지 않던 정의의 불꽃이 일었다. 토요일에 이른 점심을 먹고 여의도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신논현역으로 갔는데 역사 가득 열두 구비 줄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결국 지하철을 못타고 버스정거장으로 향했다. '우리'의 방향이 모두 같아 지도를 찾고 두리번거릴 필요없어 좋았다. 수차례 만원 버스를 놓치고 겨우 신랑과 함께 버스에 매달려 탔다. 안 얼어 죽겠다고 어찌나 껴입었는지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 안에서 땀이 삐질삐질 났다. 보통의 날 같으면 짜증 섞인 항의가 곳곳에서 터질 만도 한데 조용했다. 하차하는 승객이 있을 땐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삐져나왔는데 누군가 "많아서 너무 좋습니다!" 라고 외쳤다. 1시간이면 갈 거리를 무려 3시간이 걸려 여의도에 도착했다.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추워 죽겠는데 하필 한겨울에 이 지랄이냐고!  (콧물이 질질 ㅠㅠ) 한마음 한뜻으로 달려갔으나, 결과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이다. 가는 길에 얼마나 힘이 빠지던지, 허탈하고 허무한 마음에 허기가 졌다.

태권 V가 나올 거라던 동심의 푸른 지붕 아래에서는 도대체 어떤 간교함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냐!


강남역에서 그 고생을 한지라 가는 길에는 종로에서 버스를 갈아타기로 했다. 종로까지 간 김에 명동칼국수나 먹자며 낙원상가에서 걸어서 명동까지 갔다. 시위대가 밀집한 여의도와는 별세상이 펼쳐졌다. 연말의 종로, 12월의 명동은 화려했다. 소공동 롯데 앞의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와 네온사인이 눈부셨다. 롱패딩에 귀돌이모자를 쓰고 중무장을 한 민낯의 내가 뻘쭘할 지경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명동칼국수는 맛있고 먹고 나니 힘이 났다. 아무렇지 않은 명동을 보니 그래도 별 일은 안 생기려나 보다 하고 한편 안심이 되었다.


일요일에는 나의 생일맞이 강화도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는데 어제의 여파로 늦잠을 자고 말았다. 다행히 차가 많이 안 밀려 출발하려는데 엄마의 생일이니 (가기 싫은) 여행을 함께 가주겠다던 아들이 막판에 안 가신단다. 녀석, 어제는 내란의 수괴처럼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더니, 오늘은 여당 대표처럼 한입으로 두 말한다. 어제 민주화 시위를 갔는데 오늘 독재를 행할 수 없는 노릇이라 아들을 두고 남편과 길을 나섰다. 자식새끼 다 필요없! 나도 너 필요해서 같이 가려고 했던 거 아니거든!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고자 하나 억지로 끌고 가면 그건 이미 아름답지 않은지라 우리는 민주적 각자도생이다.


천년고찰 전등사에서 무교인 나는 소원을 한껏 빌었다. 법륜스님이 절에서 소원 빌고 그러는 거 아니랬는데 나는 만날 빈다. 많이 빈다. 전등사 위로 산길을 타고 올라가니 삼랑성이 나왔다. 전등사까지 복잡 거리던 관람객이 한 명도 있지 않은 곳, 삼랑성 정상에서 강화도를 내려봤다. 장관이었다. 호국의 염원을 담아 민초들이 쌓아 올린 삼랑성은 1600년을 이렇게 꿋꿋했구나. 또 안심이 된다.


동막해변 카페에서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쉰 뒤,  다시 석모도 보문사로 갔다. 아들이 안 오니 루지도 탈필요 없고, 돼지갈비도 안 먹어도 되고 나도 개꿀이다. 예전에는 배를 타고 가던 섬이 어느새 다리가 놓여있었다. 대단하다. 전등사와는 달리 보문사는 화려하고 세속적이었다. 낙가산 중턱의 눈썹바위 아래 새겨진 마애관임좌상까지는 "소원이 이루어지는 길" 이란 계단이 닦여있었다. 법륜 스님의 설법과 달리 정성으로 기도드리면 이뤄지지 않는 소원이 없다고 알려져 수능 때마다 인파가 몰린다는데... 오히려 좋다. 나 역시 소원이라면 차고 넘치는 욕망의 화신!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며 소원을 빌고 또 빌었다.


세계평화 자유한국 가족건강,
그리고
우리 아들 내년에 중학교 가면 훌륭한 선생님, 착한 친구들 만나게 해 주세요.  


숨이 턱에 차게 계단을 오르나는 빌고  빌었다. 나의 노력으로  하지못하는 일은 두손 모아   밖에사심이 가득한 나의 절투어는 아름다운 일몰을 보며 끝이 났다.


세상에 빛을 끄러 온 마르베스의 악령은 아가토의 손에 검은 한강물속으로 던져진다. 비록 가는 길은 사악하나...... 세상의 빛을 지키려는 자들에게 신의 가호와 은총이!



화요일의 감사

- 1600년 전 민초들이 삼랑성을 쌓는 마음으로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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