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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전우형 Feb 04. 2024

1. 겨울이 따뜻한 건 비정상이지만

소설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1. 겨울이 따뜻한 건 비정상이지만     


  일어나 점퍼를 벗는다. 귤을 하나 깐 후에 부엌으로 돌아 들어가 하얀 봉지에 껍질을 버린다. 귤의 속껍질에 붙은 하얗고 건조한 조각들을 손톱으로 일일이 떼어낸 후에 반으로 쪼개 입에 넣는다. 맛이 괜찮네?라고 잠시 생각한다. 다시 자리에 앉는다. 밖을 본다. 정확히는 밖을 지나는 자동차들을 본다. 매우 빠르게 옆면만을 보이며 왼쪽에서 나타나 오른쪽으로 사라진다. 간혹 오른쪽에서 나타나 왼쪽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속도는 조금 느리다. 아무래도 오르막인 탓이다. 겨울이 따뜻한 건 비정상이지만 나는 그것을 바라게 된다. 추위가 징그러울 때가 있다. 특히 가스난로 하나에 기대 크리스마스를 나야 할 때는 더 그렇다. 전기세가 몇 개월 밀렸다. 한전 직원은 피로에 찌든 얼굴로 내게 단전 통보문을 내민다. 나는 물끄러미 그 종이를 본다. 오래 그러고 있으면 숫자가 눈빛에 녹아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여기까지는 꼭 내셔야 합니다.

  한전 직원은 볼펜으로 동그라미를 치고 밑줄을 세 번 그었다.

  12월 20일까지는 꼭 내셔야 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한전 직원은 조금 한심한 얼굴로 내 정수리를 쳐다보다 말없이 밖으로 나간다. 유리문에 달린 종이 딸랑거린다. 전에 왔던 사람인가. 이젠 친구처럼 익숙한 얼굴. 나는 들고 있던 종이를 테이블 위로 탁 던져버렸다. 될 대로 되라지. 혼자 중얼거린다.


  나는 가스난로 앞으로 다가가 시린 손을 비비며 생각한다. 전기가 끊어진 것도 아닌데 정전된 것처럼 고요하다. 음악을 틀어 두지 않았다는 것도 모른 채 오후 4시라는 것에 소름이 돋는다. 음악을 틀 때 사용하던 핸드폰이 보이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커피나 마시자.


  자동차들이 왼쪽에서 오른쪽, 혹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사라지기만 하며, 전기세는 밀렸고, 음악이 꺼진 것도 모를 만큼 고요하지만, 이 카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어쩌면 커피가 빨리 식는다는 것일지도. 나는 부르르 떨리는 어깨를 손으로 슥슥 비비며 일거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는 편이 낫다. 작은 카페지만 할 일은 늘 산재해 있다. 급하지 않아 미뤄둔 일들을 하나씩 뒤적이다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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