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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전우형 Feb 05. 2024

자유는 사채 이자처럼

소설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

  너는 그중 어디에 속해 있을까

  끝내 헐거워진 나를 어디로 데려다줄까


  2. 자유는 사채 이자처럼


  내가 카페를 맡은 건 3년 전이었다. 그때 나는 전역 후 사채 이자처럼 불어난 자유에 가끔 압도당하면서도 그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은 채 살고 있었다.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 아무것도. 난 이제 아무것도 아닌 채로 사는 게 목표야. 아내가 들으면 없던 암도 덜컥 들어설 목표를 마음속으로 다져가던 내가 갑작스럽게 1년 내 폐업률이 90퍼센트에 달하는 카페를 차릴 이유는 없었다. 다시금 나를 매일 같은 방식으로 돌아가는 어떤 삶의 틀 안에 가두는 일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하물며 안빈낙도라는 고매한 삶의 이치를 휴식이 아닌 손해로 치는 자영업이라니. 누가 가게를 공짜로 차려준다고 해도 손을 내저을 일이었다. 하지만 집사람과 동문수학하던 오빠에게서 동생이 카페를 몇 군데 운영하고 있는데 사람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방구석에서 아내 몰래 최신식으로 업그레이드한 데스크톱으로 고작 십 년도 더 지난 구식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엔딩 크레딧이나 보고 있던 나는 그간의 다짐도 무색하게 눈치를 보고 말았다. "가보기나 하자. 응?" "알았어." 나를 이끌고 나서는 아내의 발걸음은 나비처럼 가볍고 경쾌했다.


  손님이 거의 없고, 커피를 몰라도 되며, 와서 앉아있기만 해도 된다는 근무조건이 매력적이었다. 집이 아니라 카페 한구석에서 천하통일이나 하면 되지 않겠냐고 아내는 은근히 압박을 걸어왔다. 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집사람은 성난 고양이 같을 때가 있었다. 고양이 발톱에 긁힌 상처는 오래간다.


  카페로 들어선 나는 지친 기색을 한 마른 눈동자 한쌍과 마주쳤다. 우리 둘은 의아해하며 서로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내가 카페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홀짝거릴 인물로는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고 내게도 눈의 주인은 카페 내가 아는 상식 속의 카페 사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카페 사장이라면 말끔히 정리된 서구식 머리 스타일에 첫눈에 호감이 갈만한 폴로셔츠 정도는 입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눈에 들어온 건 소매가 넓은 개량 한복에 자다 일어난 듯 한쪽 머리가 눌린 피로와 권태에 찌든 중년 남성이었다.

 

  뒤늦게 따라 들어온 아내가 분위기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저, 성진 오빠 동생 아니세요?" 하고 아내가 운을 떼자 사장은 풀 죽어 있던 얼굴에 화색이 돌며 벌떡 일어섰다. 체구가 꽤 큰 편이어서 그가 일어서자 좁은 통로가 가득 찬 것처럼 느껴졌다. 사장은우리를 가장 안쪽 테이블로 안내했다. 직사각형의 공간들이 격자무늬로 이어졌고 작은 방처럼 꾸민 아늑한 공간은 백열전구와 돗자리, 미색 쿠션들로 채워져 있었다. 아내와 나는 신발을 벗고 좌식 테이블 앞에 나란히 앉았다. 아내가 치마를 입지 않아 다행이었다. 사장은 라떼 두 잔을 타 와 맞은편에 앉았다. 하얀 우유 거품을 멋들어지게  올린 아메리칸 라떼였다.

  "여기가 매출이 괜찮았는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그는 우리가 잔을 들기를 기다렸다가 설명을 시작했고 아내는 그의 말이 시작되자 잔을 내려놓고 테이블 위에 양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나는 우유 거품을 홀짝이다가 그래서 제가 많이는 못 드리고, 즈음부터 제대로 듣기 시작했다.

  "얼마 안 되겠지만 매출의 절반을 드리겠습니다. 한번 해보실래요? 커피는 가르쳐 드릴 테니 걱정 마시고요."

  아내가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뭐라고 대답할지는 이미 정해놓았다.

  언제부터 나오면 될까요?

  내일부터 바로 나오실 수 있나요?

  그러죠 뭐.

  그는 새까만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았다. 어쩐지 속이 고스란히 들여다보일 것 같은 눈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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