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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전우형 Feb 06. 2024

그 카페는 정확히 11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소설

  당신이 혼자가 아니었을 때

  나는 혼자여도 외롭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혼자가 된 다음부터

  나는 혼자가 외로워졌습니다.

  그 둘은 완전히 다른 계절이었습니다. 



  3. 그 카페는 정확히 11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처음 맡은 지점은 여기가 아니었다(여기서 '여기'란 P시 P읍의 한 언덕배기에 위치한 작은 카페를 말한다. 주요 특징으로는 연 건지 닫은 건지 겉만 봐서는 알 수 없다는 점 등이 있다). 관사에서 8km 정도 떨어진 곳이었고, 그곳은 정확히 11개월 만에 폐점했다.

 

  코로나의 여파는 컸다. 손님이 거의 오지 않는 카페에서 하루를 보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나는 여러 달에 걸쳐 더디게 깨달아 갔다. 가시방석에 앉아 이마에 물이 똑똑 떨어지는 느낌의 반복. 시간은 바윗덩이처럼 무거웠고 매출에 찍힌 초라한 성적표가 고된 노동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이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 카페는 계약 기간을 채우기도 전에 다른 프랜차이즈에 넘어갔다. 그 사이 나는 완전한 민간인 신분이 됐다. 관사를 벗어나 카페에서 500미터쯤 떨어진 아파트로 이사할 때만 해도 카페 운영에 관한 청사진을 최소 3가지 이상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었다(심지어 이삿날은 내 서른여섯 번째 생일이기도 했다). 카페 자리에는 코끼리 모양의 엠블럼과 함께 'B' Coffee라고 쓰인 파란 간판이 새로 붙었다. 그 카페는 저녁 산책을 나가면 늘 지나치는 사거리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반경 100m 안에 경쟁하는 카페가 7개쯤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아직 명맥은 유지하고 있던데, 카운터에 아르바이트생이 두 명이나 서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그 정도면 배보다 배꼽이 큰 것이다. 

 

  현재는 이사 간 집에서 15km 정도 떨어진 새로운 카페를 전담하고 있다. 첫 카페에서 커다란 실망을 겪은 뒤 나는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다분히 우연히, 충동적으로 일은 내게로 넘어왔다. 


  아무래도 인생을 아름답게 꾸미는 능력 같은 것이 내겐 없었다. 그것은 어쩌면 남부럽지 않게 살면서도 우울이라는 두 글자에 늘 붙잡혀 살았던 과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울은 오랜 친구처럼 뒷덜미를 잡아당겼고, 시선이 닿을 듯 말 듯한 곳에서 약 올리듯 아른거렸다.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않은 채 죽은 이의 채취 같은 걸 조심스럽게 담아 꽃다발처럼 내게 건넸다. 


  비 오는 날이면 마치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밖을 내다본다. 눈을 감은 채로 손을 쭉 뻗어 앞을 더듬으며. 그러면 어미 고양이 한 마리가 길을 건너가는 게 보인다. 축 늘어진 새끼의 뒷덜미를 아프지 않게 물고서. 나는 어미 고양이를 따라 걷는다. 


  그래. 그날도 분명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후드를 쓴 채 폭우 속을 걷고 있었고. 그런 내 앞으로 혼불처럼 푸른빛 하나가 일렁였다. 나는 거기에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열 살 여자아이의 주먹만 한 푸른빛은 허공을 빙글빙글 돌며 작게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비가 눈으로 바뀌었고 모든 소리들이 일제히 잦아들었다. 평화로 가득 찬 밤의 어딘가에서 나는 보도블록에 앉아 푸른빛무리 옆으로 떨어지는 눈을 보았다. 그것은 그때까지 겪었던 내 삶의 사건들 중 가장 보람 있고 흥미진진한 일이었다.


  그때 들었던 노래 가사가 뭐였더라.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그러나 겨울을 좋아하던 한 사람의 얼굴을 간신히 떠올렸을 뿐이다. 역시 그 후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인생의 아름다움이란 딱 거기까지인 모양이다. 뿌옇게 성애가 서린 유리창을 손바닥으로 닦아도 이내 물기가 그곳을 덮어버리는 것처럼. 나는 손가락에 묻은 물기를 쪽 하고 빨았다. 비가 먼지를 품은 맛이 났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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