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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전우형 Apr 02. 2024

사람을 기다리는 일보다

소설

  마지막으로 내가 한숨을 쉰다면

  그건 사랑한다는 뜻이야          



  40. 사람을 기다리는 일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샤워를 한다.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고 몸을 닦는다. 간혹 바닥이 더러워 보일 때면 화장실 청소를 한다. 개가 오줌을 싸두면 닦고 변기 주변에 튄 노란 자국도 닦는다. 물을 뚝뚝 흘리는 채로 화장실 밖으로 나와 수건으로 물기를 닦다가 한소리를 듣고 투덜거리며 화장실 안으로 다시 들어간다. 속옷을 찾아 입고 안방 화장실로 가서 면도를 하고 이를 닦는다. 어제 벗어둔 옷을 보며 고민하다가 냄새를 맡아본다. 아내가 그 모습을 보면 인상을 찌푸리며 다가와 낚아채듯 옷을 빼앗아 빨래통에 넣는다. 아침은 먹을 때도 있고 거를 때도 있다. 아침을 먹으면 열두 시쯤 배가 고프고 아침을 거르면 열 시쯤 허기를 느낀다. 식사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손님이 없으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컵라면에 물을 붓는다. 그러면 손님이 나타난다. 부지런히 커피를 파는 날이면 오후 2시까지 식사를 못 한다. 오후 2시가 지나면 보통 손님이 뜸한 시간이 온다. 오후 3시가 넘어도 손님이 끊이지 않으면 우유를 스팀 해서 마신다. 거품이 녹듯이 부드러운 뭔가가 허기를 채우는 느낌이 좋다. 허기는 단지 배고픔을 의미하지만은 않는다. 배고픔 이상의 허기는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다. 밤하늘을 보며 걷다 귀뚜라미 소리를 들어도, 포플러 나무 위에 핀 초승달을 바라보고 서 있어도 그런 허기는 채워지지 않는다. 네가 얼마나 행복한지 말해주어도 불행을 곱씹고 마는 오전처럼. 배터리가 꺼지기 직전의 어두운 화면처럼. 공포는 외면해도 허기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그림자가 없으면 나도 없고 화면 속 글씨는 희미할 뿐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런 날은 이가 시리도록 찬 커피를 마신다. 배가 뒤틀리고 속이 쓰릴만큼 찬 커피를 마시면 우선 머리가 아프다가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어떤 감각 하나가 신경의 용량을 초과하면 다른 감각은 미뤄진다. 미루어 두었다가 사라지는 감각도 있고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밀려드는 감각도 있다. 유예가 상실로 이어져도 흔적은 남는다. 아픔을 미룰 수 없듯, 언젠가는 반드시 아파야만 한다. 사람을 기다리는 일보다는 풀잎을 닦는 일이 좋다. 바람이 불면 풀잎에도 먼지가 앉는다. 만져보면 퍼석퍼석하다. 모래로 만든 잎처럼 탄력이 사라져 있다. 잎을 한 장씩 천천히 닦는다. 스트레칭하듯 서서히 길게 잡아당기며, 끊어지기 직전의 탄력을 느끼며 닦는다. 그러고 나면 표면이 매끄러워진다. 빛이 반짝일 정도로. 하지만 마음은 그렇게 닦으면 안 된다. 마음은 지저분한 편이 낫다. 뿌연 창처럼 속에 든 너저분한 것들을 감출 수 있어야 한다. 속을 드러낼 만큼 나는 떳떳하지 못하다. 적당히 감추고, 적당히 숨기고, 적당히 치장하고, 적당히 외면하면서 아스팔트 같은 하루를 보낸다. 검고 뜨겁고 먼지투성이에다 딱딱하고 때로는 무르고 물이 스미고 얼고 녹아서 파이고 정오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아스팔트. 수없이 밟히고 떨어져 나가고 마모되고 수명이 짧은 아스팔트. 오래 남는 것들로부터 나는 거리를 둔다. 영원할 수 없는 오후의 한 때처럼, 개나리와 산수유와 수선화와 튤립과 벚꽃과 살구꽃과 매화와 목련처럼. 나를 둘러싼 것들은 하나같이 수명이 짧다. 지금 마시고 있는 커피도, 금세 향이 시든다. 뽀얀 크레마도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든다. 컵에 남은 온기가 나비처럼 하늘거리며 날갯짓하고 나는 모처럼 셋이 한 번에 얼굴을 든 난꽃을 본다.      


  아침 일과가 하나 늘었다. 필리핀에서 받은 달력의 날짜와 요일을 바꾸는 일이다. 퍼즐 맞추듯 4개의 블록을 조립하면 1년 365일을 모두 만들어 낼 수 있다. ‘APR 02 TUE’ 이런 식이다. 100%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달력은 카운터에서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올려두었다. 손님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기보다 내가 잊지 않기 위해서다. 날짜를 바꾸는 일은 중요하다. 특히 카페에서는 그런 사소한 변화가 더 귀하고 애틋하다. 매일 같은 방향으로 가는 시계처럼 카페의 하루는 다를 게 없다. 손님을 맞고 커피를 내리고 손님이 가면 정리한다. 손님이 오지 않으면 더치를 내리고 드립백을 만들고 카페를 청소한다. 화분이 메말라 있으면 물을 주고 원두가 부족하면 로스팅을 한다. 모든 일을 마치고도 시간이 남으면 책을 보거나 글을 쓴다. 큰 틀은 변하지 않는다. 여름이 오면 아이스 아메리카노, 겨울이 오면 따뜻한 라떼 정도가 변할 뿐. 나도 그 변하지 않는 것들의 일부가 된 느낌이 든다. 주말과 평일의 구분이 모호하고 아침과 저녁의 구분도 없다. 커피를 파는 건 어쩌면 시간을 파는 일. 월요병은 없고 많이 지루한 날과 조금 덜 지루한 날이 있을 뿐. 그래서 날짜와 요일을 바꾸는 일은 중요하다. 그것은 하나의 선언이기도 하고 다짐이기도 하다. 반복에 무뎌지지 않겠다는 다짐. 날짜를 하루씩 밀어내겠다는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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