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by_지니
정확히 말하면, 작년 10월 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나에게 기대가 컸던 시기에, 크고 작은 일들이 연달아 터졌다.
그 사건들은 내 일과 건강,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모두 조용히 무너뜨려 놓았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사람을 더 이상 깊게 알아가는 일이 두려워졌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목소리’로 사람을 빠르게 분류하고 거리를 두는 습관이 내 안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말투, 억양, 속도, 호흡. 그 사소한 차이에 의미를 얹고, 섬세함이라 착각하며 사람을 판단했다.
어느 날은 길가에서 불량해 보이는 커플을 보면서 ‘쟤네는 문제야.’ ‘답이 없겠군.’ ‘부모는 뭐 하는 거람.’
그렇게 마음속으로 속단하곤 했다.
'적어도 이렇게 살아야 무시당하지 않겠지.' 하며 괜한 마음에 그냥 돌아서거나, 다른 길로 돌아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화가 났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참고 절제하며 바르게 살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마음대로 사는 사람은 더 자유롭고, 더 사랑받고, 더 쉽게 가는 것 같을 때— 그때 느끼는 건 억울함, 서운함, 조급함, 외로움, 인정받지 못한 수고의 감정이었다.
‘저 사람은 왜 저래?’,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하는 마음이 들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먼저 이렇게 물으신다. “너는 지금, 너 자신을 얼마나 정직하게 보고 있느냐?”
마태복음 7장 3~5절 말씀은 타인을 판단하는 마음에 대한 경고와 자기 성찰의 중요성을 담고 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예수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아주 작은 잘못에는 민감하면서도 정작 자신 안에 있는 더 큰 문제는
쉽게 지나치는 모습을 단호하게 지적하셨다. 그것은 단순한 불균형이 아니라, 위선에 대한 경고다.
남을 고치려는 열심 속에 정작 자신의 연약함은 외면하고 있는 태도는 하나님의 눈앞에서는 진실하지 않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전에 내 마음과 삶을 먼저 돌아보고 회개하는 것.
그것이 제자 된 자의 첫걸음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정죄가 아니라, 정결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를 돌아보며 회복시키는 일이다.
"당신은 잘 살아오셨습니다."
"억지로 참고 절제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선을 택하고 싶어서 애쓴 삶이었습니다."
"주님, 나의 들보는 억울함(외로움)입니다. 이 들보를 보게 하시고, 사랑으로 덮게 하소서."
그 과정에서 쌓인 감정들을 정죄하지 말고, "그럴 수 있지." 하고 끌어안아주고 싶은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