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형 Jun 25. 2022

_태풍과 작은새-1

: 세번째 이야기.




   태풍이 왔다.      


   tv에서는 달리는 차도 날려버릴 만큼 강력한 바람이라고 했다. 밤새 창문을 덜컹대며 나를 몇 차례 깨웠던 걸로 봐서는 그 말이 허세는 아닌 듯 했다. 부스스한 눈으로 이불과 뒤섞인 채 게으름과 한바탕 다툼을 벌이던 나는 또다시 덜컹이는 창문소리를 듣고 나서야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창밖에는 듣던 대로 비바람이 꽤 사납게 요동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차가 날아갈 것 같지는 않았다.

   간단히 세수를 하기 위해 화장실을 갔다. 세면대 위로 나있는 작은 창문에는 어젯밤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풍경이 그림처럼 걸려있었다. 가까이에는 초록빛의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가 바람과 뒤엉킨 채 소리 없는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 소리가 궁금해 잠깐 창문을 열었더니 나뭇가지가 마구 휘청 이며 벽과 창문을 때리는 소리가 화장실을 가득 메웠다. 바람 때문인지 문도 덩달아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사뭇 사납고 왕왕거려서 얼른 창문을 닫지 않을 수 없었다.     

   세수를 마치고 침대에 앉아 이제 뭐할지를 잠시 고민했다. 뉴스에서는 이곳이 어젯밤부터 태풍의 직접영향권에 들어갔다는 소식으로 떠들썩했지만 나는 아무 감응도 없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기사들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살면서 태풍에 대한 이야기는 수없이 들어봤지만 뭔가 그 실체를 직접 바라보거나 경험해본적은 한 번도 없었다. 태풍에 의해 많은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 태풍은 마치 전설이나 신화 속에 존재하는 어떤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실제로 나는 내가 제주도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몇몇 친구들의 안부인사에 대해서 오히려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고민 끝에 아침산책을 가기로 했다. 태풍에 들썩이는 파도나 구경 가자는 마음이었다. 행색을 가벼이 한 후 대문 밖을 나섰다. 어제저녁 해가지기 전 잠시 주변을 걸어 다녔더니 동네의 풍광이 꽤 눈에 익었다. 당연하다는 듯 동네를 거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인 듯 했다. 담장들 사이로 좁고 호젓한 골목길들이 이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가까운 해안도로로 나왔다. 

   코너에 있던 카페는 여전히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카페 안쪽에는 바닷가를 향한 작은 뜰이 있었는데 테이블은 모두 치워져 어딘가에 숨겨져 있었고 이름 모를 나무 한그루만이 덩그러니 남아 세차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묵묵히 견뎌내고 있었다. 코너를 돌아 해안도로를 건너자 작은 포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젯밤 꽁꽁 묶여서 옴짝달싹 못하던 배들이 지금은 파도와 바람의 등쌀에 못 이겨 마구 들썩이고 있었다. 포구건너편에는 작은 편의점이 하나 있었는데 오늘은 휴무인지 불이 꺼져있었다. 이른 아침이 아니었기에 혹시나 문을 열었으면 우의를 하나 사려고 했었지만 어쩔 수 없는 듯 했다.

   언제부터였는지 불어오는 바람에 빗방울이 섞여 들어오기 시작했다. 더욱이 이리저리 휘몰아치는 돌개바람은 우산만으로 막아내기에 역부족이었다. 네이비색 바람막이에도 조금씩 빗방울이 스며들면서 어느새 어두운 쥐색을 띄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더 걷지 못하고 어제 지나쳤던 해안가의 정자에서 잠시 비를 피하기로 했다. 정자는 어제저녁 신나게 걸었던 올레길 입구에 위치해있었다. 그 길이 좋았기에 조금만 다시 가볼까 했지만 도착하고 보니 어제와 달리 길은 온통 진창이 되어있었다. 아쉬운 대로 나는 정자에 걸터앉아 파도를 구경하기로 했다.     

   해안가에 어지러이 쌓여있는 검은색 바위들 사이로 파도들은 우렁찬 굉음을 토해내며 달려들고 있었다. 그 기세가 대단하여 마치 바위의 머리통을 통째로 부여잡고 그대로 끌어다내려 바다의 심연 속에 영원히 침전시키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럴 때마다 바위들은 피를 뿜어내듯 검은 피부 위로 하얀 물거품들이 진득하게 묻어나왔다. 저 먼 바다에서도 파도들은 더 이상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 마음껏 활개 치며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흡사 상어 떼와 같았다. 육안으로도 보일만큼 커다란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저 멀리 고래 등처럼 생긴 무인도를 향해 거칠게 달려드는 것이 흉악하기가 짝이 없었다. 그 장면이 너무 인상 깊었던 나는 핸드폰을 꺼내들고 연신 촬영버튼을 눌러댔지만 안타깝게도 핸드폰 카메라로 그 모습을 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제는 제법 거세진 바람이 사방에서 사선으로 흩날리며  내 옷을 마구 적시고 있었다. 하늘은 여전히 단조로운 회색빛의 농담으로 가득하였고 그 모습이 잿빛 구름을 켜켜이 쌓아 올린 것처럼 두터워서 해가 어디에 떠있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 잠깐이라도 아침햇살이 내리쬐기를 기대했던 나는 이제 더 이상 그 모습을 기다릴 수 없었다. 오히려 1분 1초가 지날 때마다 하늘이 점점 더 어둠으로 짙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황급히 숙소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마치 지금까지 내 형편을 봐줬다는 듯 비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이미 외투가 흠뻑 젖어있었다. 옷걸이에 외투를 걸어놓고 에어컨과 제습기를 최대로 틀어두었지만 시간 내에 마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머물렀던 작은 방에는 지난밤 침대위에서 뒤척였던 흔적들과 함께 아침에 분주히 움직이면서 헝클어놓았던 짐들로 가득했다. 그것들을 하나씩 정리하다보니 옷과 함께 젖어있던 내 몸도 마르면서 약간의 오한이 일었다. 나는 적당히 방을 정리하고는 옷가지들을 챙겨들고 얼른 욕실로 향했다. 따스한 물로 온몸을 적시니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창밖의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는 아까보다 더 크게 좌우로 요동치고 있었고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면서 좀 전에 해안가에서 보았던 파도를 떠올렸다.


태풍이 왔다. 사나운 태풍이 왔구나.    

   욕실의 습한 기운이 유리창에 아른아른 피어오르며 뿌옇게 물들고 있었지만 나는 감히 창문을 열수 없었다.






   퇴실준비를 어느 정도 마치고 옷을 갈아입었을 때는 조식이 준비되었다는 문자메시지가 온 이후였다. 거실에는 어제 잠깐 보았던 주인아주머니와 처음 보는 커플이 커다란 테이블에 비낀 채 앉아있었다. 내가 조금 늦은 것인지 건너편 빈자리에는 조식이 이미 차려져 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나는 얼른 자리에 앉아 식사를 들었다. 조금 식어있었지만 웬만한 브런치식당에 내놓아도 아깝지 않을 플레이팅과 맛을 갖추고 있었다. 핸드드립으로 내린 커피도 훌륭했다. 식사를 하며 뒤늦게 인사를 나눈 커플 여행객은 어젯밤 늦게 도착했다고 했다. 거의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내렸으며 대중교통을 타고 오는데 주인아주머니의 픽업이 없었으면 여기에 도착하지도 못할 뻔했다며 안도하고 있었다. 그 과정이 선뜻 머릿속에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다.

   기분 좋은 식사를 마치고 여전히 남아있는 따뜻한 커피를 즐기며 우리는 사소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자세히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나보다 두세 살 어린 사회초년생 커플인 듯싶었고 뭔가 계획을 짜고 왔다기보다는 서로 힘들게 시간을 맞춰서 바로 이곳으로 넘어온 듯싶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듣다보니 이들에게 재미있었던 점은 이번 여행에서 아무 계획이 없다는 점이었다. 마치 우리가 일상에서 점심이나 저녁을 먹을 때 며칠 전부터 메뉴를 미리 정해놓지는 않는 것처럼 이들은 마음에 드는 숙소만 정해놓고 당일이 돼서야 그날의 날씨나 기분에 따라 갈 곳을 정하고 일정을 짜는 식이었다. 어디를 갔을 때 그곳은 어느 시간대에 가야하며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야 충분히 그곳을 즐길 수 있고 무엇을 준비해서 가야할지, 그렇게 내가 가보고 싶은 곳들을 나열했을 때 동선을 어떻게 짜야 주어진 시간 안에서 방황하지 않고 그 곳들을 차질 없이 다닐 수 있을지, 이동은 어떤 교통수단을 어떻게 이용하고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대체할만한 수단 또는 계획은 무엇이 있는지, 이 밖에 내가 여행을 가기위해 거쳐 왔던 수많은 고민들과 지웠다 썼다를 반복한 계획들이 이들에게는 아무의미도 갖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오늘은 어디를 갈지, 무엇을 할지 고민하던 그들은 내일이면 태풍이 좀 나아지니깐 한라산에 가는 건 어떠한지에 대해 내게 물었다. 나는 하마터면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물론 비웃음은 아니었다. 그냥 창밖으로 태풍이 몰아치고 있는 이 상황에서 그런 질문을 던진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다. 불현듯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벌였던 말도 안 되는 짓들도 생각났다. 나는 단지 여행비용을 아낀다는 이유로 하계용 텐트와 침낭을 렌트해서 영하18도까지 떨어진 겨울날 친구들과 야영을 계획했던 것이었다. 심지어 우리는 이 계획을 그대로 실천하기까지 했다. 물론 너무 추워서 밤새 제대로 잠들지 못했고 해가 뜨기도 전에 도망치듯 야영지를 빠져나와 편의점에서 뜬눈으로 새벽을 맞이해야만 했다. 이러한 사태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그들에게 제대로 된 답변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한라산을 다녀왔던 나는 올해부터 탐방예약제가 시행된다는 사실을 들었기에 지금은 사전에 확인하지 않고 바로 등반할 수는 없다는 점, 그리고 오늘부터 제주도가 태풍의 직접영향권에 들어가기 때문에 아마도 최소 며칠 동안은 입산을 통제한다는 점, 등산화를 비롯한 별도의 등산용품 없이 한라산을 오르는 것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몸이 힘들 거라는 점, 한라산 등산코스는 백록담이 있는 정상을 올라가는 것과 그 아래쪽의 윗세오름으로 향하는 총 2개의 코스가 있으며 중간에 하산하는 게 아니라면 하루가 꼬박 걸린다는 점 등 내가 경험했던 것들을 바탕으로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는 다음에 가게 되면 어디가 좋으니 꼭 가보길 바란다며 이곳저곳 사진까지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는 표정이었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바로 포기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바깥은 여전히 요란스러웠다. 마치 무대에서 억센 비를 표현하기 위해 사정없이 물을 뿌리듯 빗방울이 후드득 소리를 내며 커다란 유리창을 거칠게 때려댔다. 바람은 손길이 닿는 모든 것의 멱살을 움켜쥐고는 사정없이 흔들어대고 있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음악이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 창밖에서는 태풍의 우악스러움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커플은 결국 오늘 하루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였다. 주인아주머니도 하릴없이 밀어두었던 집안일이나 살필까 고민하며 나에게도 여기서 오후까지 쉬어가도 괜찮으니 편한 대로 하라며 배려해주었다. 건너편 유리창에는 머리채를 잡힌 나무들이 이리저리 휘둘리면서 소리 없는 비명이 들려오는 듯 했다. 그 장면을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잠깐 흔들렸지만 이내 괜찮다며 계획한 일정이 있으니 곧 출발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나는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 커플처럼 별다른 계획 없이 이곳에 올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세워두었던 계획을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어떤 절박함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계획했던 대로 오름을 오르고 박물관을 관람했을 때 기대했던 것만큼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었다. 오히려 오늘 하루의 끝에 섰을 때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지냈으면 하는 후회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 대가로 나는 비바람이 몰아치는 거리를 걸어야 했다. 우의는 금방 너덜너덜해졌고 온몸은 흠뻑 젖었다. 건너편 버스정류장을 가기 위해서 고작 20미터 정도를 걷는 것임에도 쉽지 않았다. 도저히 앞을 보며 걸을 수 없었고 우산은 계속해서 뒤집어졌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우의는 이미 찢어질 대로 찢어져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알 수 없었다. 손에 있는 물기는 마를 틈이 없었기에 핸드폰의 잠금장치를 풀 때마다 여섯 자리의 비밀번호를 눌러야했다. 그마저도 가끔씩 잘 눌리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대중교통이 정상적으로 운행한다는 점이었다. 태풍이 몰아치던 말든 버스는 제시간에 도착했다. 나는 버스에 앉아있는 동안이라도 편하게 가기 위해 배낭을 벗으려고 했다. 하지만 방금 전 버스정류장에서 비에 노출되는 부위를 최소화하기 위해 온 몸을 우의로 그냥 묶어버리는 바람에 배낭을 벗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어깨를 이리저리 흔들며 팔 한쪽을 힘겹게 빼냈지만 그사이 우의와 배낭끈이 마구 뒤엉켜 이상한 자세가 되면서 오히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번을 허우적거리던 나는 이내 포기하기로 했다. 어차피 버스에 자리는 많고 사람은 없었다. 그냥 2인용 좌석에 비스듬히 기대어 널브러지기로 했다. 그것도 나름 편했다.     


   창밖은 여전히 산발적인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바람이 크게 불때마다 버스가 조금씩 밀리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럼에도 버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 나갔다. 모든 정류장에 제시간에 도착해야한다는 의무감이 이정도로 중요한 것이었나 싶었다. 이런 날에는 하루정도 운행 횟수를 줄인다거나 잠시 일상을 멈춰야 하는 게 옳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뉴스에서는 경쟁이라도 하듯 최대풍속 기록이 경신될 때마다 잔뜩 굵어진 폰트로 헤드라인에 기사를 띄워댔다. 오후 3시가 되면 태풍이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기사에서는 마치 올림픽 신기록처럼 최고의 순간을 기대하는 듯한 뉘앙스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버스기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가야할 길을 묵묵히 달리고 있었다. 사실 나도 그랬다.

   한참을 달리다가 다른 버스로 환승하기위해 정류장에서 내렸다. 태풍은 확실히 아침보다 더 강해진 듯했고 맨몸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비바람이 몰아쳤다. 비를 조금이라도 덜 맞으려고 우산을 폈다가는 그대로 우산살이 다 부러지거나 아니면 내가 통째로 날아갈 것만 같았다.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50미터정도 떨어진 다른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해야했는데 걸어가는 동안 문 열린 가게는커녕 단 한명의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사실 제대로 주위를 둘러볼만한 여유가 있지도 않았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는 근처 편의점에서 새 우의를 하나 사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걷다보니 도저히 거기까지 갈 자신이 없었다. 내가 타야할 버스의 도착시간이 여유 있는 편도 아니었거니와 무엇보다도 핸드폰이고 손이고 뭐고 몽땅 물에 젖어서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야할 버스정류장이 내가 내린 곳에서 앞으로만 이동하면 도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가까스로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지만 사방이 열려있는 형태의 정류장이어서 거리 한복판에 서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마침 정류장 바로 뒤에 비를 피할만한 건물이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내부계단이 외부에 그대로 노출되어있는 오래된 건물이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건물 계단에 잠시 앉아있기로 했다. 버스에 있을 때는 몰랐지만 비바람은 무서운 소리를 내며 쉬지 않고 몰아치고 있었다. 나는 그래도 이렇게 잠시나마 비를 피할 곳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가만히 앉아 비구경을 하고 있던 찰나에 갑자기 작은 새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세차게 부는 바람을 거슬러 열심히 날개를 휘젓고 있었다. 온 몸은 이미 흠뻑 젖었고 바람을 거스르지 못할 때마다 크게 휘청거렸다. 문득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가 생각났지만 연어가 되기에 이 새는 너무나도 작아보였다. 휘청이는 몸뚱이는 위아래로 크게 흔들리며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가기를 위험해 보일만큼 반복했다. 그러다가 일순간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덜컥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결국 바람을 못 이겨 중심을 잃고 어딘가로 날아가 버린 게 아닐까. 그대로 땅으로 곤두박질치지는 않았을까. 비바람은 여전히 거세게 불어왔고 나는 결국 아무것도 확인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 작은 새가 다시 중심을 잡아 무사히 살아남았던, 압도적인 자연의 힘 앞에서 불행한 일을 당했던 간에 이 모든 건 그의 선택이었고 그가 감내해야할 운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작은 시간이 흐르고 버스가 곧 도착한다는 소리에 나는 다시 건물 밖으로 나왔다. 버스가 얼른 도착하기를 바라며 별생각 없이 두리번거리던 나는 우연히 아까 보았던 그 작은 새를 발견했다. 



   그는 내가 비를 피한 건물 바로 근처에 태연하게 앉아있었다. 두툼한 간판 아래 건물에 바짝 붙어있는 전깃줄은 비바람을 피하기에 적합해보였다. 그렇다. 그도 나처럼 잠시 쉬어가기로 한 것이다. 가려고한 곳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비바람을 뚫고 여기까지 왔고, 다시 나아가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것이었다. 잠시였지만 내심 기뻤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반가운 마음이었다.


   곧 버스가 도착했고 나는 다시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비바람은 여전히 거세게 불어왔고 나에게도 아직도 가야할 길이 남아있었다. 내가 선택한, 내가 가려고 하는 길 말이다.          

이전 06화 _아침산책-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