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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Apr 10. 2024

알코올 램프는 '뚜껑'을 덮어야 꺼집니다.

뚜껑의 다양한 경상도 사투리

우리 집은 물을 끓여 먹습니다. 무시로는 결명자차를 많이 먹었습니다만 여름에는 보리차를 주로 끓여 먹기도 했습니다. 요즘에는 비염에 좋다고 해서 작두콩차를 끓여 먹고 있습니다. 근데 별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끓여 식힌 물은 모아뒀던 플라스틱 생수병이나 잘 씻은 음료수 병에 넣은 뒤 냉장고에 넣어둡니다. 추운 겨울에는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고 식탁에 물병을 그냥 둔 채 부어마시곤 했지요. 


주말이었습니다. 물을 마시려고 물병에 막 손을 대는데 아들내미가 먼저 새치기를 하네요. 나는 아들내미가 물 한 컵을 다 따르는 동안 옆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컵에 든 물을 마시는 아들내미에게서 물병을 받아 들고 나도 컵에 물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따꿍 도"


내 말을 듣자마자 아들내미가 드라마 한 장면같이 "풉"하면서 입 밖으로 물을 내뿜었습니다. 

"에헤이, 와 이라노?"

제가 물었습니다. 

"와~ 따꿍! 따꿍이라는 말 진짜 오랜만에 들어본다. 어렸을 때 할매한테 들은 이후로 첨인 것 같은데. 엄마는 와 자꾸 할매 말투를 닮아가노?"


할매 말투를 닮아간다니, 딸이 엄마 닮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이 편한 우리 집에서는 자연스럽게 익숙한 모국어가 먼저 튀어나오는 법입니다. 

집 밖에서 '뚜껑'이라고 말할 때는 나도 모르게 의식적으로 말을 하고 있었나 봅니다. 집에서 '뚜껑'을 말할 일이 있으니 '따꿍'이라고 나오는 걸 보니 말입니다. 



'따꿍' 이야기가 나오니 아주 오랜 추억 하나가 생각이 났습니다. 국민학교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아마 6학년때였던 같습니다. 

어렵던 시절이었지만 과학 시간에 간단한 실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알코올 램프의 불을 끄는 실험이었습니다. 한 반에 58명 정도가 있었던 시절입니다. 알코올 램프 개수가 모자라서 대여섯 명씩 조를 짓고 책상을 붙여 알코올 램프 하나를 가운데 놓고 불을 끄는 것을 보는 실험이었습니다. 


알코올 램프에 불은 선생님이 켜 주었습니다. 한몇 초 불멍을 하다가 조원 중 한 명이 알코올 램프의 뚜껑을 탁 덮으면 불이 꺼졌습니다. 우리는 이것도 신기해서 몇 번이나 선생님한테 부탁했습니다. 

"새앰~예, 불 한 번만 더 캐 주이소."

그러면 선생님은 라이터로 몇 번이고 불을 켜면서 말씀했지요. 

"너거들 이렇게나 오래, 자세히 하잉께내 알코올 램프 불 끄는 거 시험 나오면 전부 다 맞추겠다, 그쟈?"

우리는 목청껏 외쳤습니다. 

"예~!"


한 두 달 뒤인가 기말고사를 쳤습니다. 과학 주관식 문제가 이렇게 나왔습니다. 

-알코올 램프의 불을 끄는 방법을 쓰시오.

나는 당연히 '뚜껑을 덮는다'라고 썼고, 예상대로 답은 정답이었습니다. 


며칠 뒤 채첨 된 시험지를 나눠주는 날이었습니다. 과학 시험지를 나눠주시던 선생님이 별안간 한 시험지를 빤히 보시면서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이경X, 니 알코올 램프 답, 맞았을 것 같나, 틀렸을 것 같나?"

"샘, 저 맞게 썼는데요."

"샘이 고민 한참 했는데, 니 틀맀다."

"와예? 맞다아입니꺼? 아~들하고도 다 맞차 봤는데 맞던데예?"


선생님은 경X이의 답을 읽어 주었습니다. 

"따꿍을 덮는다!"


와하하하하!!

친구들은 모두 한바탕 크게 웃었습니다. 

경X의 답을 보고 선생님은 정말 한참을 고민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빨간 줄을 좌악 그었고, 경X이에게 시험지에 답은 꼭 표준말로 쓰라고 신신당부하였습니다. 



뚜껑의 경상도 사투리에는 '따꿍'만 있는 게 아닙니다. 


전기밥솥이 없던 시절, 아버지의 밥은 스뎅 그릇에 고봉으로 담겨 장판 색깔마저 까맣게 타버린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모셔지곤 했습니다. 아버지 퇴근이 늦는 날 아버지 밥을 퍼서 스뎅 뚜껑을 잘 덮어서 아랫목에 두고 화려한 꽃무늬 담요까지 잘 덮어둡니다. 

어쩌다 이불이 들썩거려지면 밥뚜껑이 떨어져 밥이 담요와 대면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밥은 아무리 아랫목이라도 윗부분은 차가워지기 마련이죠. 그래서 엄마는 항상 우리에게 당부하였습니다. 

"아부지 밥 떠꺼배이 안 버꺼지게 단디 해라이."


'떠꺼배이'의 유사 표현으로는 '개뜨뱅이'가 있습니다. 

'따꿍'이나 '떠꺼배이'는 그냥 아무 뚜껑에 다 사용했지만 '개뜨뱅이'는 밥뚜껑에만 사용하였습니다. 

집안 어른의 밥은 항상 뚜껑을 덮어 드리곤 했습니다. 맨 위는 평평하고 옆으로 45도 정도의 사다리꼴 모양이 있는 뚜껑입니다. 손으로 쥐면 떨어지지 않고 쥐기 좋은 그런 각도와 높이의 밥뚜껑이었습니다. 


농담처럼 어린 머슴애들은 머리를 깎을 때 엄마들이 '개뜨뱅이'를 머리통에 대로 자른다고들 하였습니다. 위생관리가 안되던 그 시절, 청결을 위해 머리를 짧게 깎을 때였으니까요. 

우리는 그런 머리를 '개뜨뱅이' 머리라고 했습니다. 동네 머스마들은 '개뜨뱅이' 머리를 창피해했습니다. 그런데 엄마들은 한사코 아이들에게 '개뜨뱅이' 머리를 깎아주었습니다. 


'개뜨뱅이' 머리를 한 머스마들은 대개 코찔찔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반에 똘똘하게 생긴 머슴애 한 명이 어느 날 그 머리를 하고 왔습니다. 그 친구는 자꾸 자기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자기도 이상했나 봅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비록 '개뜨뱅이' 머리를 했어도 '눈물의 여왕'에 나오는 용두리 배나무집 막내아들 백현우처럼 귀였습니다. 

한 때 나를 설레게 했던 똘똘한 '개뜨뱅이' 머리의 그 친구는 공부를 잘해서 대도시로 전학을 갔고, 나중에 의대를 가서 의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바람결에 들었습니다. 


이렇게 뚜껑은 '따꿍'이 될 수도 '떠꺼배이'가 될 수도 '개뜨뱅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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