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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앨리스 Jan 22. 2021

14년간의 길을 돌아보다.

인생의 전반기를 정리하며.

첫 발을 내디딘 그때는 2006년 8월의 뜨거운 날


두바이 공항에 도착해서 2006.11.12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 나는 중동 항공사 승무원을 시작으로 4년 간 48개 국을 비행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우연찮게 배정된 In-flight Catering 분야에서 기내식 기획 및 구매의 업무, 승무원 교육을 담당했다. 신기했다. 나름 항공사라 소위 '갑'의 권리로서 계약되어 있는 국내외 기내식 제조사를  간혹 방문을 할 수 있었는데 기내식 공장, 기내식의 세계란 참으로 재미있는 곳이었다!


출처. Emirates Airbus A380 interior  @Sorbis/ Shutterstock.com


    기내식에 발을 들인 김에 전문가가 되고 싶었고  전 세계 200 여 곳의 기내식 센터를 보유한 글로벌 기업의 한국지사 구매 파트장으로 이직할 수 있었다. 목표로 정한 지 약 2년 만에 두 번에 걸친 지원이었다. 내 인생의 전반전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운이 따랐던 것 일까 시간이 걸릴 순 있어도 원하는 것에 불가능하진 않았던 것 같다. 신나게 회사를 다니며 외국 지사로의 출장도 기대해보며 다양한 항공사를 만나는 포지션에 노력을 열중하고 있던 그때, 전 세계가 뒤집어졌다!




    코로나가 닥친 그 해 2월 중순, 회사에서 나는 2년째를 접어들고 있었고 추운 날씨를 피하기 위해 친구와 인도네시아 발리를 찾았고 즐거운 휴가를 보내고 난 뒤 단 며칠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코로나가 잠시 우리 곁을 지나쳐 갔던 이전 메르스나, 사스와 같은 질병이 아님을 체감할 수 있었다. 여행을 하고 있던 때는 고작 2명에 불과했던 한국인 확진자가 돌아오고 나니 걷잡을 수 없는 확진자 수로 연일 뉴스에서는 경각심에 대해 보도하고 있었다.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은 항공업계는 짧은 시간에 크게 승객 수가 줄어져 갔고 초반에 에이 그러다 말겠지, 잡히겠지 너무나 호언장담 했던 동료들의 말들은 이제 몇 년 간 가망이 없겠구나, 힘이 안 난다, 이러다 회사가 망하는 건 아니겠지?라는 우려의 말로 바뀌어 갔다.


    달을 거듭할수록 1분 1초가 숨 가쁘게 돌아가던 기내식 공장도 활력을 잃어갔고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던 조업 직원들도 눈에 띄게 줄고 항공사의 물품을 보관하던 창고도 일부 불이 꺼져 있거나 비행기에 싣기 위한 도크(Dock) 앞 비좁을 정도로 즐비되어있던 기내식 카트, 오븐, 기내 용품들도 점점 줄어져 갔다. 하루 100편의 이상의 항공편을 준비하던 회사는 코로나 가 극심해진 이후 약 10편 남짓의 항공편을 준비하게 되었으니 직원들의 시름도 늘어만 갔다.




위기를 기회로 바꿔라!

  

    코로나가 왔다고 해서 마냥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주저앉아 울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회사나 누군가에게 의지하기보다 나 스스로 나의 살 길을 찾아야만 했다. 회사에서 나는 중간 관리직이었기 때문에 희망퇴직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이 되었는데 곧 국가의 지원금도 끊겨 무급으로 버텨야 하는 상황 직전이 되어 나는 일생일대의 결심을 했다. 희망퇴직 위로금이 많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적지 않은 금액을 바탕으로 이러한 풍파에 휘둘리지 않는 나만의 경쟁력을 쌓 '내'일을 하자고 결심했다. 솔직하게는 희망부서 내부 채용에 실패하면서 항공사를 접객하는 자리가 멀리멀리 물 건너간 것 또한 하나의 이유가 됐다.


그 자리엔 나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나중에 돌아보니 명백히도 '내 자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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