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인문학] 땅은 분명 변한다. 사람은.

by 작가 박신

땅은 분명 바뀐다. 사람은?


도시에서 살다 보면 사람의 가치가 너무 극단적으로 사는 집, 타는 차, 입는 옷들로 평가된다.

또 우리가 진리처럼 여기는 말 중 하나가 있다. “사람은 안 변해.”


땅의 가치는 절대 심어지는 작물로 매겨지지 않는다.

지금 눈에 보이는 작물은 그 땅에 잠시 머무는 과정이자 결과물일 뿐이다.

수확 뒤엔 과감하게 뒤집어져 변한다.

다시 새로운 인연(작물)을 기다리는 것이다.



집 대청소를 핑계로 추수도 끝냈으니 2주를 건너뛰고 오랜만에 시골을 찾았다.

지지난주까지 벼로 가득했던 논이 순식간에 양파밭으로 변화해 있었다.


땅은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매번 새로운 것들을 위해 참 쉽게도 변한다.


나는 어떠하지?

나는 이 모습으로 벌써 몇 해나 살아가고 있다.

그래. 집, 차, 입는 옷 모두 몇 년째 그대로이고 직장도 그대로이다.

땅처럼 살면 어떻게 될까?

계절에 따라 변화하듯, 시대에 따라 시기에 따라 새로운 것들을 위해 고집처럼 붙들고 있는 것들을 기꺼이 버리고 변할 수 있을까. 나 그런 용기가 있나?


땅처럼 자유롭고 싶고 흘러가며 변화되고 싶은데,

그러기엔 지금 내게 놓지 못할 것들이 너무 많다.


항상 새로운 기회를 꿈꾸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있음에도 정작 새로운 것과 더 나아질 것을 위해 지금 쥐고 있는 것들을 놓지 못하고 있기에 난 지금 기회에게 내어줄 빈 공간이 없는 것이 아닐까.


뒤집어지며 변화하는 땅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끈질기게 붙잡고 있던 인연들을 향한 미련, 버려야 할 것을 알면서도 쉬이 고치지 못한 습관들을 떠올리며 퍼내어 본다. 그러니 도랑이 생길 것만 같다.


소파에 누워있는 시간을 퍼내니 글쓰기 습관을 심는 도랑한 줄이 생긴다. 숏츠 보는 시간을 덜어내니 정리를 하고 메모를 하는 도랑이 생긴다. 나도 알지 못할 새로운 어떤 기회를 위해선, 싹이 자랄 도랑을 위해 별 쓸모없는 시간들, 욕심들 따윈 덜어내는 것이다.

(그래. 내게 현재 별 쓸모없는 욕심이란. 차 할부가 걱정되어 꿈보다 알바를 택한 지난달의 나를 자책하는 것이다. 차 할부만 끝내면 나는 반드시 알바는 그만두고 꿈에 시간을 내어줄 것이다. 차를 그냥 팔아버리면 될 텐데, 차마 그건 도저히 버리지 못했다…)


어느새 사색이 끝나고 나니 논이던 땅이 도랑이 아주 잘 쳐진 양파밭이 되어 있었다.

그래. 덜어내고 쳐내면 변한다. 땅도. 사람도. 나도.

도랑이 있어야 물이 흐르고, 그 물 위에서 새싹이 자란다. 이제 겨울 동안 함께 덜어내고 퍼내어, 각자의 도랑 속에서 어떤 싹이 날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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