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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가을의 일기.(1)

by 안녕스폰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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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이 되었다.

차분해진 머리로 올해, 남은 날들은 이사를 계획 중이다.

하나의 이념에 매몰되지 않으려 중앙선을 달려온 시간조차도

고속도로 한복판에서는 자살 행위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있는 지금의 나.

대출을 받아 회사와 더 가까운 곳에서 선선한 기분으로 향후 2년에서 4년 정도를 보낼지 고민 중이다.

또 하나의 선택지는, 팔과 다리가 바쁘게 움직여 체온 상승에 일조하는 먼 거리에 살게 되더라도

선선한 경제적 여유를 택할 것인지.

고민은 되지만, 큰 이슈가 생겨 생각을 한 곳에 모을 수 있음에 감사한 요즘.


_2022.11.2.




이사 갈 집을 보려고, 오후 휴가를 내었다.

근 6년 만에 이사를 준비 중이다.

아무것도 모르겠는 무지의 머리를 멍하니 붙들고, 인터넷 웹문서에서 조악하게 읽어 내린

전세 계약 지식을 되뇌어 보며 상현역에 내렸다.


개인 소유의 전세 매물이라는 조건으로 실평수 8평의 아담한 방을 구경했다.

10년 안 된 계획도시 신축 건물의 위엄으로 작은 구조마저도 용서가 되었다.

화장실과 싱크대가 조금 지저분하지만, 그건 삶의 흔적이고 중고의 개념이니 받아들여야겠지.


양호한 수납공간, 깨끗한 도배 상태,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최첨단인 냉난방 시스템에 안도하며

돌아서는데,

으앗..

공인 중개사님의 입에서 결국 집 소유주가 대출을 끼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봤던 완전 무결한 등기부 등본 샘플의 비현실적 공란은 환상 같은 거였을까.

전문가의 대출 관련 용어들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말이 길어질수록 점점 미궁에 빠질 뿐이다.

순수한 뇌를 꺼내 직접 지금의 말과 절차를 새겨 넣고 싶어 진다.

공증, 말소, 두 개 공인중개 업체의 1억씩의 책임 담보..

이것은 정확하진 않지만, 내 머릿속에 새겨진 개념으로는 갭투자자 소유의 집인 걸까.

대출을 받아 2억여 원의 오피스텔 매물들을 사 모아, 전월세를 놓는다는 젊은 영끌족의 재테크..


어찌 되었든, 오늘의 짧은 경험으로 이사 준비의 시작을 텄다.

광교 초역세권의 분위기를 좀 더 느껴보고 싶어 휴가도 내고 간 만큼

상현동네 주민 대정쓰의 추천으로 오피스텔 근처의 카페 이보아르에 왔다.

따끈한 아인슈패너로 머리 속도 정리할 겸.

아직 저녁 손님이 많아지기 전의 Break Time과 같은 시간대라 한적하고

분위기 좋은 음악에 춤추듯 미끄러지는 펜의 움직임이 마음을 편하게 한다.


이곳은 완벽한 계획과 구간을 가진 신도시다.

네모난 상자처럼 쌓아 올려진 건물들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서 있고

그 안에는 또한 차곡차곡 다양한 종류의 상가가 들어서 있다.

큰 도로가 건물 사이사이를 가로지르며 삶의 소음을 직설적으로 뱉어내는 곳.


이런 계획이 가득한 공간에서 비계획의 뇌를 움직이며 글을 쓰는 나는,

끊임없이 예쁜 종이를 투박하게 채워가고자 하는 나는.

이 땅의 불순분자처럼, 지금 마시고 있는 아인슈패너 우유 거품 위의 티라미수 가루처럼.


씁쓸하고 쓸쓸하게, 온전하다.


_202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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