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그는 결혼 전부터 은은하게 아이를 원했다.
이왕이면 시간절약 차원에서 쌍둥이라면 어떨까 하며 재미없는 농담을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고 나 스스로도 거부감이 없으니,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내 몸이 할 수 있는 마지막 희생이며 기쁨일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이번 생에서 가장 크고 요란한 마지막 축제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나는, 곧 절망의 늪에서 춤을 추었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완전해지는 축제에서 독무 또는 페어로 처절하게 사지를 휘저으며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찐빵처럼 동그랗고 유약한 나의 딸은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가 그녀를 사랑한 시간 속에서.
그렇게, 이제야 겨우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모유를 먹이고 싶어 새벽에 두 번씩 유축을 하고 직수를 시도했다.
내 아이가 기억할 수 없는 시간을 순간순간 달렸다.
유전자가 추억하는 태초로 회귀하는 이 감정과
아기의 울음소리에 온몸의 신경이 반응하며 저릿해지는 이 순간은
내 인생의 마지막 사랑이 시작되었다고 말해주었다.
네가 있어 압축되는 이 시공간 속에서
우리는 더 간절하게 몰입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