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통일 신라의 천재였던 고운 최치원은 신분제의 한계로 인해 더 이상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하자 전국을 유랑하면서 다양한 흔적을 남겼다. 보령에 있는 보리 섬이라는 이름의 맥섬은 남포방조제가 만들어지고 나서 지금은 육지로 변한 곳이다. 그곳에는 고운 최치원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고운 최치원은 경주 최씨의 시조이며 신라 말기의 문신으로 유학자이자 문장가였다.
진골 귀족들이 득세하며 지방에서 도적들이 발호하는 현실 앞에서 자신의 이상을 채 펼쳐보지도 못한 채 관직을 버리고 은거하여 행방불명되었다고 전해지지만 누군가는 신선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워낙 머리가 뛰어나기도 했지만 다양한 글을 남겼던 이유이기도 하다.
《삼국사기》 최치원 전에는 "나이 열두 살에 바다를 따라 배로 당에 들어가서 학문을 익혔다"
《택리지》 전라도 영암 군조에는 "최치원과 김가기, 최승우는 상선을 따라 당으로 들어가 당의 제과에 급제했다."
당으로 유학 가는 최치원에게 아버지는 10년을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면 내 아들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한다. 맥섬까지 어떤 이유에 의해 왔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지만 전국의 수많은 명승지를 돌아다니면서 최치원은 흔적을 남겼다. 사천에 있는 멋들어진 남일대 해수욕장에도 맑고 푸른 바다와 해안의 백사장 및 주변 절경을 보고 남녘에서 가장 빼어난 절경이라는 한자 남일대라는 이름을 붙였다.
제1회 고운 최치원 선생 추모 전국 서예대전에서 대상작을 받은 작품이 돌에 새겨져 있다. 예전에 왔을 때는 이 비가 없었는데 이번에 가보니 새로운 흔적이 남겨져 있었다.
"학이 춤추는 봄의 연못에 달이 비추고 꾀꼬리 우는 벽수에 바람이 분다."
정자 하나와 녹색의 진한 향기가 느껴지는 풀들의 궁합이 너무 잘 어울려 보인다. 월전리 서쪽에 있는 보리 섬 서쪽에 높이 3m, 너비 1.8m의 바위 8개가 병풍처럼 서 있는 곳에 최치원의 한시가 음각되었다고 전하고 있는 보리 섬에는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에 도취되어 글을 읽으면서 바위에 한시를 새겼다고 한다.
지금은 남포방조제가 만들어지고 나서 주변에 논과 밭만 보이지만 옛날 바닷물이 이곳에 들어왔을 때는 조그마한 보리 섬의 매력은 더 컸을 것이다. 이곳에 새겨진 글자는 마모가 몹시 심해 판독할 수는 없으나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45호로 지정되었다.
보령방조제가 만들어낸 기름진 땅이며 생명을 길러내는 논 너머로 멀리 죽도가 보인다. 죽도에는 아름다운 정원인 상화원이 있다.
보령에는 이 곳 말고도 고운 최치원의 흔적이 남겨져 있는 곳이 있다. 지금은 사찰이 있었음을 알리는 석탑만 남아 있는 성주사지다. 성주사지는 신라시대의 사찰로 남해 화상이 다시 세운 선종사찰이다. 성주사지와 보리 섬을 오가면서 풍광을 즐기면서 작은 섬의 매력에 빠져 이곳에서 머물렀던 고운 최치원은 타고난 머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시대가 한계를 그었던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