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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20. 2022

전쟁의 시대

남해를 방어했던 강진의 전라병영성과 탱크

러시아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전 세계가 요동치고 있다.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가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래에 전쟁이 없는 시대가 올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전쟁은 분명히 큰 상처도 만들지만 큰 변화를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군사 분야의 변화는 과학이나 경제, 문화, 예술 등의 분야와 마찬가지로 시간과 공간 측면에서 볼 때 일정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거의 5년 만에 강진의 전라병영성을 찾아가 보았다. 예전보다 축성이나 보완이 많이 되어 있었지 난 전라병영성의 내부는 복원하지 않고 그대로 둔 상태였다. 전라도의 53주와 6진을 총지휘하던 전라병영성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훨씬 이전인 1417년에 왜적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된 성이다. 

성벽은 방어하기에 좋은 옹성을 갖춘 4개의 문루가 있고 각 모서리와 성문 사이에는 치성이 놓여 있다. 이곳에 처음에 성을 쌓을 때는 눈의 자국을 따라 성을 축조하라는 계시를 받아 쌓았다고 해서 설성이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하였다. 

성벽에 올라가서 주변을 걸어서 돌아다녀본다. 옹성 12개소, 객사 및 연회장이 15동의 부속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에 남아 있었던 곳이다. 공간혁명에서 세계 무역의 중심국으로 자리매김했었던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동인도 회사에서 근무하다 이 머나먼 이국땅 조선까지 오게 되었던 하멜은 이곳에 억류되어 있었다. 

강진의 전라병영성은 1417년(태종 17) 쌓았으며 전남과 제주도를 포함한 53주, 6진을 다스리는 육군의 총지휘부였다. 길이 1060m, 높이 4.87m에 면적이 9만 3000여 ㎡나 되는 곳이다. 역사상 전라병영성이 함락된 것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로 이때 막대한 피해를 입었는데 이듬해인 1895년(고종 32) 갑오경장 때 폐영 되었다. 

보편적이고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전쟁이 일어날 것 같지 않지만 전쟁은 필요에 의해 일어나게 된다. 우리가 준비를 잘해야 되는 이유이기도 하며 때론 변화에 민감할 필요가 있다. 

전라병영성은 군사적인 목적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평온하기만 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8년간이나 강진에 억류되어 있던 하멜은 전략적 요충지인 전라병영성에 군사적으로 진일보한 기술을 전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에는 없었던 탱크가 한대가 전라병영성 내부에 놓여 있었다. 네덜란드는 당시 유럽에서 군사강국이었다. 네덜란드와 스웨덴 군사혁명의 우수성은 1643년 로크 루아 전투에서 입증될 정도였으며 바다로 뻗어나가는 해양강국이기도 했다. 1625년 발행된, 네덜란드 법률가 휴고 그로티우스의 '전쟁과 평화의 법'은 전투에서 벌어지는 약탈을 제한하였다. 


수군의 삼도수군 통제영과 같은 반열인 육군의 전라병영성(병영면)에는 탱크가 한 대 놓여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전쟁에서 보듯이 2차 세계대전에서 강력한 화력을 가지고 있던 탱크는 지금도 유효한 지상군의 무기다. 가장 먼저 기갑사단이 창설된 곳은 바로 영국이다. 1927년 독일이 전차 1대도 없었을 때 영국군은 기갑사단의 원형인 시범 기계회사단을 창설했다. 이 기계화사단을 동원한 기동작전을 당시 독일과 소련은 전극적으로 모방하기 시작했다. 

독일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했지만 전투에서는 승리했다. 연합군이 제1차 산업시대의 정체된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독일은 이미 제2차 산업혁명으로 가능해진 새로운 종류의 전투를 전개하고 있었다. 독일군은 현란한 속도와 과감한 기동을 내세운 기갑사단이 빠르게 유럽을 잠식해갔던 것이다. 

기술의 변화는 생각지도 못한 분야로 나가기 시작한다. 앞으로는 사람이 전면에 나서게 되는 전쟁이나 전투는 점점 더 줄어들게 되고 신경망과 같은 정보전이 더 중요하게 될 것이다. 시간이 변했지만 근본은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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