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의 역할

논산에 자리한 김임, 김수문 장군의 흔적

군인에게 필요한 소양은 무엇일까. 군인이라는 것은 직업적으로 근무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조선시대까지 군인은 무신이었는데 양반의 한축을 이루었던 직업군이기도 했었다. 군인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무과에 급제를 해야 하는데 조선시대에는 특히 문무를 겸했던 사람들이 많다. 전통적인 유학자 가문에서도 무신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강령 현감(康翎縣監)을 역임한 김장생(金莊生)의 아들인 김임의 묘가 논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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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5년 평안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여러 번 호인(胡人)의 침입을 격퇴하여 북변 방어에 공을 세운 김수문 장군의 묘와 함께 김임선 생 신도비가 자리하고 있다. 김임은 1513년 (중종 8)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그의 아들 김수문은 제주목사와 평안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무신으로 왜구와 오랑캐의 침약을 막는 공을 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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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으로 들어오니 김임선생의 묘와 함께 김임선생 신도비가 있다. 논산의 사계 김장생의 아들인 김집과 다른 김장생의 아들인 김임은 묘한 공통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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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임의 묘는 자신의 신도비 옆에 있다. 아버지와 아들의 흔적이 같은 공간에 있는데 그 의미는 조금 다르다. 김수문은 평소 책 읽기를 좋아하였으며, 탐라에서 왜적을 몰아내고, 서북으로는 호인을 물리쳐 나라의 간성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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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비로 다가가 본다. 김임의 신도비는 받침은 거북 모양이며 비의 머리는 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놓고 다투는 형상이라고 한다. 아들인 김수문이 소세양에게 비문을 받아 1561년 (명종 16)에 신도비를 세웠다고 한다. 앞에는 김임의 행적이 있으며 뒤에는 고령 김 씨의 족보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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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신도비를 남긴 김인은 노성에 살면서 호조판서를 증직 받았는데 만석꾼 부자로 인근 30리가 모두 그의 소유지라서 산림재상이라 불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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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거북 모양의 받침을 본다. 증직이라고 하는 것은 국가에 공이 있는 인물이 죽기 전이나 죽은 후에 품계나 벼슬을 높게 받는 일로 지금의 군인에게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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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임 선생 묘의 석물과 망주석이 있는데 조금은 특이한 형태다. 김임 선생 묘에는 그의 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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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트인 이곳에서 바라보니 김수문 장군 신도비의 귀부만 남아 있는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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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하게 군인정신에 대해서 이야기하곤 한다. 군에서의 규율은 일반 사회에서의 요구 수준보다 높으며 엄격하다. 조선시대 중심이 되는 군인의 조직은 태조 때 종친·훈신들이 거느렸던 사병(私兵)을 없애고 병권의 집중을 도모한 후 세조 때 중앙군 조직이 오위(五衛)로 정리되었는데, 오위의 구성원은 갑사(甲士)와 같이 시험을 거친 전문군인이 중심을 이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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