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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29. 2022

영원함의 사유

구미에 자리한 신라불교 초전지

불교가 이 땅에 오기 전에 중국에 먼저 자리를 잡았다. 불교의 도래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실제로는 한나라 무제 대 장건이 서역을 개척했던 당시에 불교가 중국에 들어온 것으로 보고 있다. 인도철학의 전통을 상기해보면 범아일여를 주장했던 정통 인도 사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던 논리라고 볼 수 있다. 혜원은 정신은 몸의 변화와 무관하게 영원한 것이라고 보았으며 범진은 정신과 육체는 우리 삶의 두 측면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무엇이든지 시작은 있다. 신라에 처음 불교가 전래된 곳을 신라불교 초전지라고 부르는데 그곳은 구미에 있다. 지리적으로 고구려와 신라로 통하는 곳인 선산지역의 여러 지명은 아도화상과 연결이 되어 있다. 신라불교 초전지에는 아도화상이 머물렀던 흔적과 더불어 어떻게 신라에 불교가 전파되었는지 알 수 있는 전시관이 조성이 되어 있다. 

당시에 마을 사람들이 살던 모습을 재현을 해두었다. 이제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 가을에 돌아보기에 좋은 곳이다. 범진이라는 사람은 사람의 정신과 육체를 이렇게 비유하였다. 칼날은 우리의 육체이며 날카로움은 정신이다. 결국 같은 것을 의미한다. 칼날이 제거되면 날카로움을 이야기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날카로움을 제거한다면 칼날이라고 말할 수 없다. 정신은 곧 육체이고 육체는 곧 정신이다. 

신라불교 초전지에 온  아도화상(阿道和尙)은 5세 때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출가하여 16세에 위나라로 가서 아굴마를 만나고, 현창화상(玄彰和尙)의 강석(講席)에서 공부한 뒤 19세에 귀국한 후 신라로와 불교를 행하기를 청하였다고 한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항상 있다. 그 여파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지만  산스크리트어 'upādhyāya'(팔리어 upajjhāya)의 속어 형태를 음사한 것으로 보고 있는 아도화상의 화상은 역생(力生)으로도 번역되는데, 스승의 능력이 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깨달은 사람은 고요한 물과 같다고 한다. 불교에서 자비란 타자에 대한 절대적인 감수성으로부터 나오는 강력한 동정심을 의미한다. 절대적인 감수성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이곳에서 느끼는 것은 평온함과 배려다. 고요함을 추구하려고 했던 아도화상은 이곳에서는 배척을 받았다. 일반인들이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돌보지 않는 이유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이나 가진 것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욕심이 앞서게  되면 고통에 바진 타인에 대해서 결국 무관심하게 만든다.  

신라불교초전기념관에서는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신라의 불교전파 과정을 들려주며, 전통가옥체험관(한옥 펜션)에서는 숙박을 할 수 있게 해 두었다. 청화산과 냉산이 감싸는 대지 3만6916㎡(1만1167평)에 신라불교초전기념관, 전시가옥, 사찰음식체험관, 전통가옥 체험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가을색이 물들어 가는 신라불교 초전지 마을은 하나의 마을 공동체처럼 보인다. 모든 종교는 삶의 철학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가지고 싶은 집착을 실현해주는 수단이 되어서는 집단 공동체 이기심으로 변질이 된다. 

신라불교 초전지는 넉넉한 공간을 갖추고 있다. 반도체는 더 직접이 될수록 효율이 높아지지만 사람은 공간과 공간의 여유가 넓어질수록 효율이 높아진다.  

경상북도 3대 문화권 활성화 지원사업으로 ‘모례:랑(廊)’ 관광상품 프로그램을 오는 9월 24일부터 10월 29일까지 약 1개월간 신라불교 초전지와 모례마을 일대에서 개최한다고 한다. 

어떤 것은 사유하지 않아도 명확하게 보이는 것이 있고 사유를 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사유하는 사람들이 점점 적어지고 사유의 방법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바로 보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게 된다. 영원한 사유는 무언가를 품을 수 있는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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