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거란의 문경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의 촬영지 문경 속의 길

문경이라는 지역은 하늘아래 만들어진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 대표적인 과거기롤 문경새재가 있으며 상인들이 오가던 토끼비리가 있고 충주에서 문경으로 오가는 길의 이름은 하늘재라고 부른다. 하늘재라는 길은 계립령이었던 이름이 대원령으로 바뀌었다가 조선시대에 하늘재가 된 길이다. 문경의 조령산, 주흘산등의 내로라하는 산들이 즐비하지만 하늘재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고려말에 홍건적의 난으로 고려의 공민왕은 충주에서 문경으로 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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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은 고려왕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지만 그의 아버지라는 아자개가 지방호족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자신의 아들인 견훤이 아닌 왕건을 손을 들어준 사람이 아자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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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는 경북 문경시와 충북 충주를 연결하는 명승 32호로 영주 죽령, 영동 추풍령과 함께 조선 시대 3대 고갯길로 꼽히고 있다. 오래전에 찍었던 드라마 왕건도 문경에서 찍었다. 그래서 2013년에는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 관광 100선' 투표 결과 문경새재가 1위에 뽑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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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세트장을 비롯하여 주변에 볼거리와 수려한 풍광을 품고 있는 문경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왕건의 시대를 지나 그 후손들이 계속 왕위에 오르고 있던 고려 초기를 다룬 현종대의 이야기가 이곳에서 촬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음모를 가라앉히 강조는 5대 경종의 첫째 아들인 목종을 끌어내리고 사찰에 살던 태조 왕건의 손자인 현종을 왕위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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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드라마인 고려 거란전쟁은 고려를 개국하는 역할을 했던 최수종이 강감찬 장군의 역할을 맡아서 고려를 지키는 역할을 보여준다. 고려 제8대 황제 현종 시절, 거란의 2차 침략부터 마지막 6차 침략까지 치열한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데 40만의 거란군에 맞선 흥화진의 치열한 수성전부터 광활한 대평원에서 맞붙는 거란과 고려 기병들의 대회전까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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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의 아름다운 계곡에서 물이 흘러가는 소리를 들어본다. 강감찬의 귀주대첩은 동쪽에 위치해 있었던 고려를 영어 이름 Korea로 알리는데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Korea라고 불리고 있으며 K가 붙은 문화, 맛등은 모두 고려로부터 시작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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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의 수려한 계곡은 겨울에도 그 경치가 고즈넉하니 좋다. 한국 역사상 3대 대첩 중 하나로 꼽히는 귀주대첩은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제3차 침략을 감행하며 발발했을 때 크게 승리한 전쟁이다. 현종은 강감찬 장군을 상원수로 삼아 거란과 맞서 싸운 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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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거란전쟁의 많은 장면이 문경에서 촬영이 되고 있는데 드라마 촬영 명소,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 잡기에 나선 문경시는 내년에도 세 편의 작품과 촬영 계약을 마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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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항상 움직이고 있다. '움직이는'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라틴어 emovere는 감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며 본질적이며 복합적이라고 한다. 문경의 계곡에서는 오래전에 이곳을 찾고 그 아름다움에 남겨진 글귀들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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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관점에서 보면 문경이라는 지역은 역사적으로 왕건과도 깊은 연관관계가 있으며 그의 손자가 왕위에 올라 위기에 닥친 손자의 이야기가 이곳에서 그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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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장꼬장한 성격으로 한직에서 넉넉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던 강감찬은 거란이 쳐들어왔을 때 70세였다고 한다. 그는 무관이 아닌 문관이었다. 강감찬은 현종에게 저 아래지방의 나부로 피신할 것을 권했다. 곰탕으로 잘 알려진 나주는 고려 왕건이 신라의 땅을 고려의 땅으로 만들었다고 하여 신라의 땅 나주라는 지명을 붙여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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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이 귀주대첩을 성공적으로 이끌게 된 것은 바로 물길이었다. 홍화진이라는 지역에 가서 굵은 밧줄로 소가죽을 꿰어 강을 막았다. 강에 물이 별로 없다는 것을 본 거란군은 건너기 시작하였고 소가죽을 묶었던 밧줄을 끊어내고 일시에 강물을 흘려보냈다. 예상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많은 거란군이 물에 휩쓸려 갔다. 이순신과 강감찬은 전투에서 공통점이 있다. 다시 적이 쳐들어오지 못하게 끝까지 공격을 했다는 것이다. 강감찬은 회군하는 거란군을 압록강 이남 강동 6주의 하나였던 귀주에서 참담한 패배를 거란에게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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