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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심장 Oct 28. 2024

막내는 저에게 우주를 느끼게 해 줍니다

먼저 지난주 토요일 상담을 놓친 것에 대해서...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 해 일상을 살아가려 애쓰고 있지만, 자꾸 밑으로 가라앉는 걸 어쩔 수는 없네요. 간혹 생각합니다만, 아이들이 없었다면 저는 아마 며칠이고 침대에서 빠져나오지도, 먹지도 않고 잠만 잤을 텐데요. 하지만 저에겐 아직 아이들이 있고 그래서 하루 종일 제가 원하는 대로 침대라는 성 안에 갇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요즘엔 딱 세 가지만 규칙적으로 해보려고 노력 중인데요, 아침 9시에 일어나기, 밤 12시에 잠들기 그리고 매일 청소를 하려 노력 중입니다. 사실 직장 다닐 때는 어쨌든 저쨌든 매일 지켜지던 그것들이 지금은 참 어렵기만 합니다.


그렇게 혼자 집에 있으면 심심하지 않냐고 물으시는데.. 전혀요.  전혀 심심하지 않습니다. 뭐... 길게 잠을 잘 때도 있고 유튜브를 볼 때도 있고 아이들과의 시간을 차고 넘치게 갖고 있습니다. 아이들도 처음엔 당황해하더니 이젠 제가 하루 종일 같이 있는 게 자연스러운 모양입니다.

아이들을 거의 20년 가까이 키워오면서 이렇게 오래 길게 붙어 있어 본 적이 없습니다. 늘 아침에 나갔다가 밤늦게 들어오거나, 혹은 일찍 들어오는 날이라고 해도 들어와서 정신없이 간식 챙겨 먹이고 청소하고 제 저녁 먹고 그리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고는 했으니까요. 이렇게 예뻤나 싶을 정도로 아이들은 정말이지, 너무 예쁩니다.

특히나 막내아이는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됩니다. 이렇게 예쁜 아이의 어린 날을 어떻게 놓쳤을까, 이제 와 정말 아깝기 그지없는 시간들입니다.




아이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정말 신기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작은 얼굴과 작은 몸에 눈 두 개, 콧구멍 두 개, 입에 귀.. 나와 같은 게 다 들어가 있을까요. 아이 등에 귀를 대고 있으면 쿵쾅쿵쾅 심장 뛰는 소리와 꼬르르륵- 뭔가 소화되는 소리, 그리고 제겐 없는 그르릉 그르릉 하는 소리까지... 제 손가락 두 개 굵기만 한 다리로 폴짝폴짝, 어찌나 잘 뛰어다니는 건지 아이를 보면서 입을 헤 벌리고 웃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됩니다.


다른 아이들도 예쁘지만 유독 막내 아이에게 더 그런 마음이 드는 것 같아요. 하긴, 전에 만났던 사람이 저에게 이래서 사람들이 막내딸~ 막내딸 하는구나.라고 말할 정도로 애교가 많고 사랑스럽기도 하고요.

막내는 다른 아이들과 좀 다르게 저와 마주쳤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어쨌든 저쨌든 길에서 데려왔대도 한 달짜리 아이들이었는데 막내만 유일하게 성묘 때 데려왔으니까요. 거의 한 살짜리를 병원에서 마주쳐서 데려왔어요.

그러니까 퇴근 길에, 아이들 간식이 떨어져서 원래 주차를 하던 방향 반대쪽에 있던 동물 병원을 기억해 내고 사러 간 길이었습니다. 병원 가득 왕왕-대며 짖는 개들 소리 사이에서 당황도 안 하고 철창 안에 갇혀서는, 그 사이로 손을 뻗어 저를 어떻게든 만지려 드는 작은 고양이 한 마리. 고양이 간식 캔을 집어 들며 물었더니 누가 데려왔다고, 사실 진작 보호소에 보냈어야 했는데 바빠서 못 보냈다는 말을 덧붙이더군요. 한 살짜리 성묘라. 아마도 제 때 보호소에 갔다면, 이미 살처분되어 세상에 없었을 아이.

아이는 자신에게 우연히 죽음의 시간이 지나간 것을 전혀 알지도 못한다는 듯, 그저 호기심 가득- 이 아줌마는 누굴까? 싶은 눈망울을 빛내며 손을 뻗어 제 옷깃을 잡으려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 강아지들이 짖어대는 사이에서도 말이죠.



그 뒤로 제가 바로 키울 수 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덥석 안아 들기엔 이미 저는 아이들이 너무 많았고 한 번의 파양과 한 번의 임보처에서 쫓겨난 이후에서야 겨우 제 막내딸로 품을 수 있었죠. 그래서 그런 마음인가.. 유독 막내아이에겐 애틋한 마음이 있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막내는 유독 다른 아이들보다 표정이 많아요. 그래서 다른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제가 고양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긴 한데, 막내만큼은 그 생각을 정말 잘 안 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루 말할 수도 없이 사랑스럽다고 해야 하나요.


지난 상담에서 첫째 애가 다른 아이들을 다 돌봐줬다고 했는데, 유독 막내에게는 그 품을 허락하질 않았어요. 아마 아이가 다 큰 성묘인 상태로 들어와서인 건지, 막내 아이를 쫓아다니면서 물기도 엄청 많이 물고 괴롭히기도 엄청 괴롭혔죠. 집에서 막내의 비명이 하루에 한 번은 들릴 지경이었으니까요. 막내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유심히 살펴봤지만 그래도 막내는 여전히 씩씩하게 지내길래 아이 성격이 몹시 좋은가 했는데요.

아이들이 어렸을 땐 출장미용을 불러다가 여름 전에 털을 다 밀었거든요. 그때 너무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막내 몸에 흉터가 정말 많았거든요. 내가 모르는 시간 속에 아이는 숱하게 오빠에게 물리고 다쳤는데, 어쩜 그렇게 밝게 지낼 수 있었을까... 생각했던 게 기억납니다.


하지만 아이도 실제로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나 봅니다. 어느 날엔가, 간식을 안 먹더군요. 음? 했고 다음날, 그다음 날... 뭔가 엄마의 촉이라고 느껴진 상황에서 바로 아이를 병원에 데려갔는데, 황달이 심각하게 왔다고 했습니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과도한 스트레스도 그중 한 원인일 수 있다고 하더군요. 아차, 싶었습니다. 아무리 낙천적인 아이라도 스트레스받을 수 있는 건데 말이죠.


아이는 위험했습니다. 무조건 강제급여해야 했고 무조건 수액을 맞춰야 했죠. 하지만 수액줄을 잡기엔 아이 팔은 너무 가느다랬고 혈관이 흐물 해져 더 이상 수액줄을 잡을 수가 없게 되었을 때조차도 저의 슬픔은 돌볼 틈이 없었습니다. 결국 아침에 병원에 들러 아이를 맡기고 저녁에 다시 데려오는 날들이 계속되었습니다. 병원이 쉬는 평일에는 아이를 차에 태워 이동장에 넣어두곤 두 시간마다 한 번씩 주차장에 내려가 목도 못 가누고 늘어지는 아이를 안아 사료를 갈아둔 죽을 주사기에 넣어 먹였습니다. 안 먹으려 혀로 밀어내는 아이를 붙들고는 미안해, 미안해, 한 입만...  다 먹었다!! 엄마들 늘 하는 뻔한 거짓말을 하고 또 하고..  그 전쟁 끝 둘 다 지쳐버리곤 했죠. 그런 아이를 안아서 재우고 올라가서 일하고 또 내려가는 일을 반복했었습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려내야 했습니다. 입안에 피맛이 느껴질 정도로 일이 많았던 시기였대도, 스스로 갈려나가는 것 따위는 중요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나마 아이가 팔이나 다리가 아닌 등으로 꽃아 넣는 수액 주사를 견뎌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이는 제가 직접 만들어주는 건조 닭가슴살을 퍽 좋아했습니다. 그 좋아하던 걸 아픈 내내 코 앞에 들이밀어도 거들떠도 안 보더니... 어느 날 밤엔가, 닭가슴살을 하나하나 저며 밤새 말리려 놓아둔 6단짜리 건조기 앞에 쭈그리고 밤새 엎드려있던 날이 아직도 떠오릅니다. 그때의 기쁨이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었어요. 한 달, 한 달 반 정도 지나자 아이의 코와 귀, 발바닥에 붉은 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아이 나이는 14살. 그 뒤로는 너무도 건강하게 잘 뛰어놀고 떼쓰고 그리고 사랑스럽습니다.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꼬리를 마치 공갈 젖꼭지처럼 물고 잠드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늘 꼬리 끝이 축축하게 젖어 있거나 침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곤 헀죠. 혹시나 꼬리 끝의 살이 짓무르거나 뼈가 상할까 싶어 병원에 가서 물어봤더니, 큰 문제가 없으면 괜찮다 하시더군요. 아이가 어렸을 때 엄마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해 그런 건가... 꼬리를 물고 두 눈을 꼭 감은 채 잠드는 아이 등을 가만가만 쓸어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언젠가부터 그 버릇이 없어져 버리긴 했네요.


이렇게나 나이가 많음을 느낄 때마다 새삼스럽게 깜짝깜짝 놀라게 만드는 나의 사랑스러운 막내 딸아이... 나에게 온 우주를 보여주는 사랑스러운 아이.




첫째 아이가 재작년에 떠난 이후 막연하던 아이들과의 이별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그다음은 누굴까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게 넷째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요. 그래도 가장 마지막까지 제 곁에 남아 있는 건 이 아이겠지요?


제 삶이 아이들보다 길다는 건 정말 축복입니다. 떠나는 쪽보다 남겨진 쪽이 훨씬 괴롭습니다. 울컥울컥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핏물이 느껴질 정도로 고통스럽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가장 마지막에 서서 아이들이 떠나는 걸 모두 지켜봐 줄 수 있다는 건 아무리 되돌려 생각해 봐도 행운입니다. 부디, 이 아이의 마지막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하기에 저는 깊고 짙은, 달콤한 우울 안에서 어떻게든 매일매일 애써 기어 나오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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