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맛은 소주맛과 같다

해외 가면 이런거 마셔야 해

by 황훈주


"와. 쓰다."


카페에 할머니 두 명이 들어오더니 가장 쓴 커피를 달라고 한다.

젊은 친구들도 마시기 힘들어 하는 거라 설명을 드렸으나 괜찮다며 끝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


"거봐. 커피 쓸 거라고 사장님이 그랬잖어."

"근데 맛있어. 난 원래 쓰게 먹는 사람이야."


혹시나 싶어 각 얼음을 조금 더 넣어드렸다. 천천히 마시면 향도 올라올것이고

쓴 맛도 조금은 중화되리라. 하지만 화려한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그 쓴 물을 그냥 털털 털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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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뭐가 그리 급해서 그려."

"티브이 보니까 외국 애들이 이렇게 마시드만."

"왜. 비행기 한 번 타보려구?"

"자식새끼들이 있는데 한 번은 보내주겄지."

"나도 한 번 맛 보려 했는디 다 마셔 부렸구만."


카페가 살아남으려면 스페셜티를 팔아야 한다는 공식은 아직 유효했지만

그 방법은 참 오묘했다. 직접 로스팅하고 블랜딩해서 나만의 맛을 찾아가려 했지만

내 취향이 곧 손님의 취향일리는 없고, 나와 같은 사람이 한달 수익을 벌게 해 줄 정도로

매일 마시는 일도 없다. 어느덧 10년이 되어가지만 커피는 여전히 어렵다.

매번 조용한 손님만 오기 마련인데 왁자지껄한 할머니 손님은 오랜만이다.


"원래 한 번에 털어 마시는거여."

"속 쓰리겠구만."

"난 다음에 와도 이거 마셔야겠다. 소주맛이네."


커피는 소주맛이라. 직접 핸드드립으로만 커피를 내리다보니 카페는 조용한 편이다.

도심 외곽에 있는 작은 카페다보니 손님이 많지도 않다. 자연스럽게 커피를 내리는 일을 끝내면

손님들의 이야기를 엿듣는게 일상이 되었다. 그리 좋지 않은 습관인 거 같아 커피 한 번 내리고 담배 한 번 피는

루틴을 이어갔지만 이번엔 담배보단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이건 어떻게 만드는 거래요?"

할머니가 묻는다.

"제가 직접 볶아 만듭니다. 쓰진 않으셨어요?"

"난 원래 이렇게 먹어. 맛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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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은 빠르게 앉아 빠르게 마시고 빠르게 나간다.

늙는다는 건 어찌보면 시간이 남들보다 빠르게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으로 최대한 느릿하게 살아가려 한다.


할머니들이 한바탕 공간을 가득 메우다 빠지니 조금은 허전하다.

10년동안 이 테이블을 지키고 있었다.

그녀들이 부디 비행기를 타는 날이 오기를 빌었다.

커피는 소주맛이라. 납득이 되는 감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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