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점점 깊어져 간다. 울긋불긋 빛깔에 마음이 벅차고 너그러워진다. 쉬어가는 사이사이 준비하는 세상의 순리가 여기에 가득 들어 있다. 누군가의 열정이 부풀어 오른 자리가 초록이라면 내어줌과 쉬어감을 적절하게 이어 주기 위해 가을이라는 계절이 있나 보다.
온 세상의 빛깔이 바람으로부터 날려와 나무 사이사이에 살며시 내려앉는다. 완연한 가을빛에 머물러 길게 호흡을 드리울 동안 눈앞에 흐드러지게 흩날리는 빛들이 땅으로, 땅으로 살포시 내려앉는다. 그 빛이 낙엽이다. 그 손길은 사랑이다. 마지막이 아닌 시작이라는 의미로 누군가가 살포시 덮고 자랄 공간을 이룬다.
아름답게 그려진 세상이라는 풍경 아래 각자가 가진 빛깔이 그대로 나린다. 그대로인 것은 거짓이 아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나고 자란 땅 위에 얽힌 이야기가 낙엽 하나에 오롯이 들어 있다. 낙엽의 이야기는 굴러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구르고 덮여가 포근해지도록 다음을 위한 준비가 된다.
무언의 약속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 기어코 우리 앞에 또 다른 생명으로 다시 나타나게 된다. 낙엽의 인내로 가지고 간 약속은 다음을 위한 멈춤의 시작이다. 다시 만나게 될 일들이 고마운 일이다.
새로움의 시작으로 열정 속에 피고 진 우리를 살포시 내려놓아 또 다른 누군가의 쉼이 되도록. 살면서 무엇이 중요한 일인가! 낙엽을 따라 바스락거리며 걷는 이 길은 지금을 잘 안아갈 마음으로 포근히 덮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