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이지 않을 유연함으로 빛나는
시│현정아
작은 숲길 사이 산책을 하며 숨을 죽이다
노니는 새소리에 마음이 정갈해진다
뽀얀 울음,
그것은 울음이 아닌 지저귐
생이 나고 자란 마디마디
켜켜이 쌓인 부리마다 나무가 되어
가지로, 잎으로, 숲으로 불러 드는 소리
벤치에 누워 또다시 숨을 죽이다
눈앞에 하얀 하늘이 빛을 따라 반짝인다
나뭇잎 햇살을 품어 안은 쑥 물빛 그림
바람결에 나부끼어 반짝이던 물비늘
나무가 내는 소리만큼 그려지는 그림
새가 내는 소리를 용기라 한다면
나무가 그리는 그림은 시절의 기록
흔들릴지언정 꺾이지 않을 유연함
따라가는 호흡의 크기, 깊어진 포용
그늘은 그만큼씩 두터워지고 있었다
홀로 누운 자리, 결코 혼자가 아닌 때
덩달아 심장은 자꾸만 쿵쾅거리고
황홀해진 마음만큼이나 눈이 부시다
작은 숲길을 걷는다. 바람이 가지 사이를 스치며 나뭇잎을 흔든다. 그 소리를 따라 도는 일은 요새 누리는 행복이다. 점심시간 잠깐의 여유만 있다면 직장 근처 공원을 도는 일이 즐겁다.
계절 따라 달라지는 풍경이기에 보는 재미, 발견하는 재미, 멈추어 서서 감흥을 느끼는 재미까지 쏠쏠하다. 봄이 가는 길목. 햇살을 받은 나무가 한층 푸르러지고 있다. 바람은 시원하게 그늘을 만들어내느라 분주한 모양이다.
사각이듯 떨리는 풍경이 눈에 든다. 그늘을 따라 돌면 소나무, 참나무 가지 위를 오가는 산새들의 소리가 정겹다. 고운 울음이 가지 끝마다 매달려 종알거린다. 그 소리는 울음이 아니다. 하얗게 퍼지는 기척과 같다.
생이라는 하얀 숨. 가지 끝에 쌓인 시간만큼, 나이테를 따라 켜켜이 새겨진 계절 따라 호흡하는 소리이다. 다시 태어나는 소리이다. 나무는 새의 부리를 통해 단단해지게 된다. 나는 벤치에 누워 새의 노랫소리를 듣는다.
눈앞엔 하얀 하늘이 가득 펼쳐지고, 서걱대는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부서진다. 그 빛은 바람 따라 흔들거리며 각기 다른 그림을 만들어낸다. 나무가 내는 그림에 그만 눈을 뗄 수 없었다.
바람을 닮은 선, 새소리를 품은 색. 온통 초록이 말간 하늘을 감싼다. 빛은 부서져 내게로 떨어져 내린다. 나무가 그리는 그림은 단지 풍경만이 아니다. 머무는 자리마다, 흔적마다 나의 삶이 귀하게 수놓아지던 순간이었다. 시간은 그 위에 아담하게, 조용히 쌓인다. 내가 지나온 계절마다는 지금 가지 끝에 앉아 고요히 움직이고 있다.
만약 새소리를 시절을 이어온 용기의 목소리라 한다면, 나무가 그리는 그림은 지금 내가 살아가는 삶의 기록이다. 내가 그려내는 그림이라 할 수 있다. 흔들릴지언정 꺾이지 않는 유연함으로, 누구에게나 편안하게 사유할 나무 그늘을 내어줄 수 있기를 소망하게 한다. 내가 지금 벤치에서 그러하듯이.
눈이 부시어 가슴은 점점 벅차오른다. 아주 잠깐의 시간이 이만큼 풍성하게 다가오다니 아무래도 오늘 나는 횡재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