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비는
시│현정아
여름비의 애처로움을 만져본 자가 있을까
하염없이 쏟아지던 하늘 비는 그대로인데
세상에 내려진 뒤 젖어가는 방식은 다르다
사람이라는
태어난 뒤로 맞아가는 절정을 끼고
시절마다의 비 마디마디 내리는 길 따라
걷는 내내 젖어가는 옷가지는
흥건해질 대로 흥건해져
눈앞에 뿌연 시야가 비인지 눈물인지
그래도 사람이라는
눈물을 소화해 마르도록 걷다 보면
투명해질 대로 투명해진 내가 장하다
걸린 나무 틈 사이 햇살이 뽀얗다
나는 그대로 여름이 된다
여름비를 그대로 안아갈 수 있다는
그것이 내가 가져가는 방식이라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 이어지는 것이 꼭 여름과 같다. 뜨거운 해만큼, 장대 같은 빗줄기가 퍼붓는 만큼 조용하게 지나칠 수 없는 계절이다. 무슨 일을 하건 여름은 스케일 자체가 다르다. 여름은 부지런함을 빠르게 포개어 간다. 여름은 누구보다 일찍 깨고 늦게 잠든다. 그만큼 땀을 많이 흘리는 시기다.
요새 내가 여름만큼 바쁜 이유는 이직 후 맞는 한 달 동안 업무를 익히느라 정신없기도 했고, 집 리모델링을 시작하여 3주간 임시로 거주하는 곳에서 생활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퇴근 후 식사를 마치고 리모델링하는 집에 다녀오면 하루 일과는 끝이 난다.
여름의 해만큼 내 생활도 일찍 시작하고 늦게 잠든다. 그래도 여름이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시간 반 동안의 출근길이 멀기도 하지만, 가까이에서 여름을 보아갈 수 있어 좋다. 모든 계절이 그러하지만, 깊은 여름을 향해 달리다 보면 온갖 세상이 그대로 다가온다. 초록이 깊어지고 지나는 바다와 너른 하늘의 구름과 해와 비의 이야기를 만나갈 수 있다.
그중 여름비는 어느 계절에 내리는 비보다 유난히 강하다. 여름이라는 특성만큼 강하고 세차다. 하늘을 뚫고 나온 뒤 세상 만물이 그대로 비 안에 갇힌다. 식물도 나무도 사람도 강한 비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그만큼 애처롭기도 하다. 비만큼 옷이 젖어들면 그만큼 젖어가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흠뻑 맞아가는 방식은 땅에 닿은 순간 알게 된다. 눈을 크게 뜨지 못할 만큼 비는 내리지만, 이 비가 곧 지남을 안다. 이 비가 있어야 제대로 젖는 방법을 알게 된다.
세상에 태어난 이후로 우리는 어느새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절정의 순간들을 맞는다. 시간이라는 비를 한 걸음씩 걸어가는. 길 위에서 우리는 옷이 젖고 무거워진다. 발걸음을 옮기기엔 버겁기도 하다. 마음이 비처럼 눈물에 젖어 애달프다. 시절의 기운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다. 내 눈앞에 번지는 것이 빗물인지 눈물인지 분간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각자가 짊어진 무게를 이겨낼 수 있다. 시간은 기어코 흐른다. 여름비를 그대로 안고 걸어가듯, 견디어갈 수 있는 힘이 있다.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빗속에서 가끔은 눈물을 삼키며 걷다 보면 어느새 여름이라는 햇살이 나를 감싼다. 초록의 기운이 진하고 생생하게 퍼져 나간다. 비를 견뎌낸 나를 그대로 안아준다. 나무에 맺힌 빗방울이 고와진다. 비가 퍼붓는 만큼 안아가는 시절이기에 비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그래서 여름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