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서의 날들
내가 네 번째로 사랑하는 계절 / 한정원의 8월, (주) 난다 -시의적절 시리즈
<잔서의 날들>을 따라가는 나의 그림자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한다.
곧 멀리 떠나야 할 사람. 둘은 마주 앉아 바라보고 바라본다.
마지막 밤이 서로의 윤곽을 서서히 뭉갤 때까지
언젠가 한 사람이 떠나고 또 한 사람이 떠나도, 뜨지 못하는 영혼처럼 테두리는 남는다.
그것이 최초의 회화였다고 플리니우스는 말했다. ‘최초’라는 말을 꼬투리 잡자면 사실은 아니다. 아니지만 믿어볼까, 기원에는 사랑이 있다는 것, 사랑이 기원을 창조한다는 것. 거기에서부터 하늘이 펼쳐지고 바람이 불고 파도가 밀려온다고, 거기에서부터 쓸쓸한 봉우리가 일어서고 설운 호수가 고인다고.
존재 말고 존재의 그림자를 더듬은 흔적. 사람의 꼬리뼈와 세 번째 눈꺼풀, 고래의 뒷다리와 같이 절멸하고도 남은 선. 8월은 내게 그런 선이다. 그런 선을 쥐고 잠을 자고 잠을 자지 못하는 시간이다.
작은 더위와 큰 더위를 자나 잔서, 한풀 수그러든 열렬과 열심, 피로를 견디는 어떤 얼굴 어떤 지경으로 꾸려진 낮밤들, 이제 없는 것들의 기원에 골몰하고, 오로지 지금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미래를 기다리는 하루하루.
일곱 달을 잃고, 나는 붓을 든다. 곧 가뭇없을 8월, 7월과 9월 사이의 그림자를 붙잡으려고. 그 시도는 실패사 자명하다. 어떻든 시간은 붙잡히지 않을 것이므로. 그렇더라도.
8월의 여름이 흐르고 있다.
흐른다는 것.
자명한 시간 사이 나는 무엇을 움켜쥐고 있나.
길다면 긴 일곱 달을 나는 무슨 마음으로, 생각으로, 행동으로 지나왔을까?
다 잃어버린 시간이지만, 구체적으로 나열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때의 나는 그것이 최선이었음을 고백한다. 일곱 달은 지나친 과거이지만 8월이라는 시간은 과거가 만들어준 것이다.
지금 흐르고 있는 것도 시간이라는 굴레다.
8월의 나는 어떤 시간을 달릴까?
버거움과 무난함의 사이에서 갈팡지듯 오르고 나리는 고갯길을 오늘도 건너본다.
8월 이 여름, 그 잉여로움을 담는다.
작은 더위를 지난 큰 더위는 다음을 기약한다.
작은 더위가 서서히 시작되는 저녁나절의 움직임이 시끄럽다.
여름밤의 청량함만큼이나 울어 젖히는 여름이라는 생명이 여기저기 분주하다.
그 소리는 초록의 열정만큼 깊고 푸르다.
노을의 8월은 색조차 타는 듯이 곱다. 불타는 해의 수고로움을 길게 가져간다.
그때 나는 가장 푸른 계절을 향해 본다.
그대로의 빛.
소담스러운 빛이 나뭇잎을 출렁인다.
빛이 반짝거린다.
8월이기에.
하늘 깊은 색을 나무는 안다.
물 흐르듯 시간은 가지만 8월은 지금이 가장 좋은 때이다.
가까이 남는다는 것.
나는 어떤 생명의 빛깔을 내지르며 온전히 이 여름을 노래할 수 있을까!
한정원 작가가 이야기한 8월을 나는 사랑한다.
어느 계절 못지않은 푸르름을 담는다.
가장 긴 해를 맞아, 가장 큰 비를 만나고, 가장 높은 하늘의 구름을 마주한다.
이런 수고로움이 있기에 8월의 달이 고맙기만 하다.
여름이 높이 걸리고 이윽고 여름이 길게 펼쳐진 자락을 따라간다.
높고 깊어 가는 하늘 아래 가장 빠르고 가장 늦게 8월은 흐르고 있다.
한정원의 8월을 읽어 가며 내가 따라갈 날들이 좋아지는 8월.
여름이다.
잔서의 날들
* 잔서: 늦여름의 심하지 않은 더위. 잔열(殘熱). 잔염(殘炎). 순화어는 `늦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