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
내가 네 번째로 사랑하는 계절 / 한정원의 8월, (주) 난다 –시의적절 시리즈
한 곳에서 오래 살아가는 사람
태어나 살아가는 동안의 자취를 잃지 않은 사람
그런 사람들을 볼 때 나의 마음은 부러움이랄지 자괴감이랄지. p.116
한 곳에 머무른다는 것은 오랜 안정이 주는 여유로움을 느끼고 있는 것과 같다.
반대로 한 곳에 오래 머무른다는 것은 그곳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여기를 잘 안다는 것은 오랜 경험과 인내가 축적되어 나타난 희로애락의 응집과 같다고 생각한다.
삶의 희로애락이 녹아든 곳
그곳을 지켜내는 삶.
그 마음
나의 마음이 다하는 곳.
거기에서 나는 안정과 시작과 마침을 잘 이끌어 가고 있을까.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서 정주의 마음이 없다면 그곳은 나의 것이 아니다.
내 것이 되는 첫걸음이 바로 나의 마음이 닿는다는 것이다.
그 마음으로 시작된 인연이 결국 내 삶에서의 다함을 처음으로 만들어 내기에.
정주의 마음
그 오랜 숙명 같은 고리 안에 얽힌 나의 길은 더디고 더디지만 그럼에도 걸어가는 순간의 합이 차곡차곡 이룰 일.
그 마음.
나의 마음이 다하는 곳. 일.
정주定住는 ‘정하거나 약속한 곳에 자리를 잡는 삶’을 뜻한다.
떠도는 삶의 반대편에 있는 낱말이다.
정주는 외적 정주와 내적 정주로 구분 지을 수 있다.
외적 정주는 내가 이해한 대로 같은 장소에 몸이 머무르는 것이다.
반면 내적 정주는 보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장소의 범주이다.
마음에서 머무른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p.117
‘자신에게 머무르는 것, 스스로 견디는 것’
어떤 만족이나 해답이 바깥에 있다는 착각을 이겨내라고.
모자라는 자신 안에서 사랑으로 인내하고 머무르라고.
그것이 정주라고.
p.118
그 말에 나는 들통난 기분. 그래, 나는 나를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지긋지긋한 사람들을 통틀어 제일 지긋지긋한 사람은 바로 나인 것이다.
먼 데서 유토피아를 찾는 것이다.
아무리 멀리멀리 가도 나를 벗어날 수는 없는데.
나의 유토피아는 나의 폐허에 있는데.
p.118
나는 하루 24시간 안에 어느 장소에서 나의 몸과 마음을 제대로 놓이고 있을까.
나의 사색이 글로 피어나 기록으로 이루어지기까지 흐르는 시간이 정주가 된다.
거기에 몰입하고 거기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만큼 나는 나를 정주한다.
이롭다는 것.
나의 몸과 마음이 머물러 좋게 되는 것.
내가 기꺼이 받아들여 행할 수 있는 것.
더딘 일 안에서도 조급하지 않을 여유를 만들어 내는 것.
홀가분의 쉼을 호흡하기 위해 평안을 찾는 것.
쉽게 흔들리지 않은 평정을 안아가는 것.
날카롭고 시끄럽고 분주하고 부대끼는 인생 안에서도 올곧은 소신을 이루어 가는 것.
조금씩 닿는 일들로 나의 마음이 전해지고 나의 육체가 행동하여 결국 내게 대시 이로운 일들로 쌓아지는 것.
그것이 나를 정주하는 일.
독서가 그러하다.
필사가 그러하다.
한 줄 읽어내는 어귀가 그러하다.
받아들이는 마음이 그러하다.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이 그러하다.
사랑으로 매맨지는 마음이 그러하다.
스스로 단단해질 마음이 그러하다.
내 소신을 잘 지켜내는 나의 마음이 그러하다.
결국 장소가 중요하지 않았다.
내 마음은 어디에 있든지 나로 보살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내는 자체로 인해 정주하는 삶을 이루게 된다.
8월을 다해가는 오늘 독서로 이루는 정주의 밤이 더욱 그러하다.
짧은 독서 정주행으로 다해진 마음이 기쁘고 고마워 나는 또 내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