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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Oct 31. 2020

할 것: 메일에 얽힌 사연을 써보기

어제보다 잘 쓰는 법_61일 차

도저히 쓸 말이 없을 때 나는 습관처럼 메일함이나 구글 드라이브를 뒤적거린다. 사연 없는 메일은 하나도 없다. 회사원 대부분의 글쓰기는 메일이 주를 이룰 것이다. 그런데 이 사연을 따로 글로 풀어볼 생각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아마 메일함은 업무 공간이라고만 여기는 게 보통일 터다.


사실 메일함은 알짜배기 글감 창고다. 여기서 뽑은 소재는 짤막한 일기가 될 수도, 성과를 낸 비법이 될 수도, '을의 숙명'을 주제로 한 칼럼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메일을 뒤지다 보면, 당시 기억과 감정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내 '쓸 말이 도저히 없는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이미 앞선 연재에서 메일함을 여러 차례 뒤적거린 후 건진 사연을 글로 옮겼다. 


말 것: 독자 반응에 울고 웃고(6일 차)

할 것: 나는 왜 그 글이 좋을까?(29일 차)

할 것: 이불 킥 리스트 만들기(38일 차)


여기에 덧붙여 글쓰기에 관한 사연을 하나 더 소개한다. 내 글쓰기 실력을 매번 키워주는 사람들이 있다. 다름 아닌 일러스트 작가들이다. 사보에 실릴 일러스트를 의뢰하는 메일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쉽게 말해 '내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 그려주세요'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2020. 9. 15. 오후 5:32 일러스트 제작 의뢰 메일


이 메일의 수신자는 추상화를 그리는 일러스트 작가다. 나름 의뢰 내용을 구체적으로 쓴다고 썼으나,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이토록 뜬구름 같은 설명을 듣고 어떻게 매번 뚝딱 그려내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물론 내가 디자이너가 아닌 탓에 가지지 못한 역량이 신비로워 보이는 것일 수 있지만.


달마다 이 디자이너에게 메일을 쓴다. 그때마다 쓰기 전과 후는 확연히 다르다. 무엇보다 스스로 글의 짜임새를 더 구체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 보통은 디자인 상으로 강조하는 표현은 글의 주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디자인과 본문이 어떤 지점에서 어우러질 수 있는지 되새기는 이 작업은 글의 완성도를 한층 높이는 효과를 발휘한다.


예를 들어, 위 메일은 '작은 습관을 반복하는 시스템'을 주제로 한 칼럼의 일러스트다. 이 시스템을 층층이 쌓이는 벽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벽 하나가 메일 반복하는 소소한 습관을 은유한다. 또 매일 쌓이고 '있다'는 동적인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움직임을 나타낼 수 있는 요소를 추가하도록 요청한 것이다. 


일러스트 작가와 나의 공통점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일을 한다는 것. 우리가 쓰고 그린 결과가 나날이 선명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 그도 이 점을 원할지는 미처 묻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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