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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태경 Jul 21. 2023

왜 너는 쿼츠 시계보다 기계식 시계가 더 좋은 거야?

쿼츠의 상용화는 기계식 무브먼트를 엿 먹이고 각종 시계 회사를 줄도산시켰다. 1969년 세이코 아스트론(Astron) 쿼츠 무브먼트(Wikipedia 'Quartz Crisis')


왜 너는 쿼츠 시계보다 기계식 시계가 더 좋은 거야?




내가 시계를 좋아하는 이유를 떠들다 보면 상대가 갸웃하는 특정 구간이 있다. "시계는 다 건전지 넣어줘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면 나는 꼭 그런 것은 아니며, 쿼츠 시계와 기계식 시계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장황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쿼츠 시계가 더 싸고, 더 튼튼하고, 더 정확하지만 그럼에도 기계식 시계가 더 좋거나 더 낫다는 방향으로 빠진다. 그럼 상대방은 두 번째로 갸웃하며 묻는다.


"왜 너는 쿼츠 시계보다 기계식 시계가 더 좋은 거야? 쿼츠 시계가 더 싸고, 더 튼튼하고, 더 정확하다며?"


쿼츠(Quartz) 시계와 기계식 시계를 간단히 설명하면, 전자는 배터리로 움직이고 후자는 태엽으로 움직인다. 내가 가진 시계들 중 쿼츠 시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28%이고, 기계식 시계는 72%이다. 심지어 쿼츠 시계 중 내가 선물 받은 것을 제외하고 내가 산 것만 포함시킨다면 그 점유율은 17%까지 떨어진다. 이 말인즉슨 내가 쿼츠 시계를 내 돈 주고 사는 일이 거의 없으며, 그럴만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비단 이런 생각은 나에게만 그치지도 않는다. 어느 브랜드 하나 빼놓지 않고 쿼츠 시계의 라인은 기계식 시계의 라인보다 저렴하다. 이는 기본적으로 쿼츠 기술의 놀라운 비용 혁신으로 인해 나타난 현상이지만, 동시에 각 브랜드에서 쿼츠 시계와 기계식 시계의 등급을 나누고 있다는 인상도 준다. 쿼츠 시계는 왜인지 기계식 시계보다 시계 외장의 마감이 떨어지거나, 다이얼 디자인이 단순하거나 혹은 구매에 있어 선택지가 적다.


이는 곧 아래의 순환논리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기계식 시계는 쿼츠 시계보다 비싸다. 왜냐하면 기계식 시계가 쿼츠 시계보다 고급이기 때문이다."
"기계식 시계는 쿼츠 시계보다 고급이다. 왜냐하면 기계식 시계가 쿼츠 시계보다 비싸기 때문이다."


인상적인 것은 쿼츠 시계가 처음 세상에 상용화되었을 때는 거의 모든 기계식 시계 회사가 커다란 타격을 입고 줄도산했다는 것이다. 이게 그 유명한 쿼츠파동 혹은 쿼츠위기(Quartz Crisis)이다.


쿼츠 시계는 기계식 시계와 '다른' 구동방식인 것은 맞지만 그게 '낮은' 등급을 의미할 수 있을까? 어느 정도는 브랜드의 고급화 전략이 낳은 결과일 수도 있다. 쿼츠 시계가 따라 하지 못하는 것은 기계식 시계 무브먼트에 새겨지는 유려한 세공과 맞물리는 부품들의 정교함일 것이고, 기계식 시계가 쿼츠 시계보다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축적해 온 역사성일 것이며, 기판이 망가지거나 배터리 누액으로 손상을 입는 쿼츠 무브먼트와는 다르게 기계식 시계는 웬만하면 수리가 가능하다는 미래의 수리 가능성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다름'에서 판단할 일이다. 쿼츠 시계는 기계식 시계와 다르게 부품들의 동력을 배터리가 만들어냄으로, 매번 태엽을 감아주어야 하는 수고로움이 없다. 동시에 동력을 주입하는 방식이 가끔 태엽을 감아주는 식의 간헐적인 방식이 아니라, 몇 년 동안이나 배터리에서 일정하게 흘러드는 전류에 의한 자동적인 방식이므로 동력의 공급이 훨씬 안정적이다. 여기에 더해 기계식 부품들이 맞물려서 만들어내는 시간의 일정함보다 전류로 인한 석영(Quartz)의 떨림으로 만들어지는 시간의 일정함이 더욱 정확하다. 이런 식의 차이를 등급을 나눠 차별하고 있는 상황을 반드시 기술적인 요소로만 판단할 수는 없다. 제품을 디자인하고, 생산하고, 광고하고, 유통하는 방식에서 쿼츠 시계와 기계식 시계를 구별하려는 인식의 의도적인 개입이 아니고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고 보인다.


그렇기에 나 역시도 왜 쿼츠 시계보다 기계식 시계가 더 좋은 건지 질문을 받으면 웃으며 "그러게 말이야, 덕질이 다 그렇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냉소는 '나는 쿼츠 시계보다 더 구닥다리의 기계식 시계를 쓰는 사람'이라는 자의식으로 이어지고, 이러한 자의식은 자신에 대한 자조로 이어지거나 혹은 자아에 대한 특별한 이미지의 강조로 이어진다. 내가 나를 비웃던지 추켜세우던지 간에, 내가 나를 남들로부터 특별하게 구별 짓고 있다는 전제는 일정하게 유지된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기계식 시계가 가진 아날로그함이 좋은 걸까? 아날로그함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기계식 시계를 바꿔 차겠답시고 매번 태엽을 감아주고, 날짜를 맞추고, 시간을 맞추다 보면 대체 이게 무슨 짓거리이며 누구를 위한 행위인지 의문이 든다. 이것이 아날로그인가. 스마트폰이 발명되고, 인공지능이 책을 쓰며, 공책과 만년필이 아니라 브런치 같은 온라인 플랫폼에 글을 쓰는 21세기에 벌어지는 이 헛된 짓거리가 아날로그냔 말이다. 이것은 결코 좋을 수만은 없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 기계식 시계가 가진 수리 가능성이 좋은 걸까? 왜냐하면 기계식 시계는 부품들을 정기점검만 해주면 '평생' 쓸 수 있으니까? 이는 쿼츠 시계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하물며 사람 몸도 정기점검을 해야 하는데 무엇인들 필요하지 않으랴? 더군다나 정비 비용으로 치면 쿼츠 시계가 압도적으로 저렴하며, 기본적으로 쿼츠 시계는 심지어 튼튼해서 고장도 잘나지 않는다. 만약 무브먼트에 고장이 생긴다면 아예 같은 무브먼트나 호환되는 무브먼트로 교체하면 된다. 그 무브먼트가 단종되면 어떡하냐고? 기계식 시계도 이 문제는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100년이 채 흐르기도 전에 썩어 문드러질 유기체가 '영원히' 쓸 수 있는 시계를 욕망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그렇다면 기계식 시계의 무브먼트를 이루는 부품 가격이 비싸서일까? 그럴 수도 있다. 쿼츠는 어디까지나 정확성과 효율성을 달성했지, 기계식 시계처럼 태엽을 이루는 부품 하나하나에 그림을 새기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이런 장인정신을 발휘하는 기계식 시계는 몇몇 최고급 브랜드에서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값싸고 범용으로 제작되어 판매되는 기계식 시계 무브먼트는 쿼츠 무브먼트만큼이나 별 볼일 없는 장식을 자랑한다. 그리고 범용 무브먼트가 만들어내는 처참한 정확성을 보다 보면, 내가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물건을 시계랍시고 차고 다니는지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쿼츠 시계와 기계식 시계의 구동방식에서 오는 차이는 어떤가? 쿼츠 시계는 보통 1초에 1번씩 초침이 움직이며, 보통 초침과 다이얼의 인덱스의 정렬이 맞지 않다. 이와는 달리 기계식 시계는 보통 1초에 초침이 여러 번 움직이며, 이런 탓에 초침과 인덱스의 정렬이 한 번쯤은 맞물리게 되어있다. 문제는 스위핑 쿼츠(sweeping quartz)라는 기가 막힌 기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 방식은 배터리 수명은 조금 줄어들지 언정, 기계식 시계처럼 초침이 여러 번 움직인다. 즉 '너희들은 이런 거 못하지'라던 기계식 시계의 면상에 엿을 먹인 것이다.




내가 이번에 쿼츠 시계에 대한 인식을 재정립한 것은 다름 아니라 최근에 멋진 쿼츠 시계를 구매했기 때문이다. 가재는 게 편이고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내 시계가 얼마나 멋진 시계인지 알아달라는 일종의 자기 PR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 좋은 걸 왜 모르고 살았지 하고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어떻게 시계가 오차라는 게 없이 이렇게 정확하지? 어떻게 이리도 충격에 강하며, 수리 비용이 이렇게 저렴하지? 나는 쿼츠 시계에 감탄하며 다름을 오로지 다름으로만 볼 수 있는 지혜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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