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우리가 처음 만난 장소에 갈 거야"라며 파트너를 틴더 본사 앞에 데려가 사진을 찍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 일화가, 내가 틴더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다. 저 티 없이 맑고 기뻐 보이는 표정의 얼굴과 생각이 많아 보이는 얼굴, 그리고 뒤에 놓인 틴더 본사 정문 입구. 정말 너무 웃겨서 좋아한다.
에바 일루즈(Eva Illouz)의 책을 읽다 보면 현대사회에서 만들어지는 친밀성이 공급과 수요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시장 논리와 긴밀히 엮여있다는 것에 설득당한다. 현대사회에서 모노아모리(monoamori, 일대일관계)나 폴리아모리(polyamori, 다대다관계) 속에서 상대방을 친밀한 대상으로 고른다는 것은 상대방이 무엇을 갖고 있고 무엇을 원하는지, 나는 무엇을 갖고 있고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고려와 연결된다. 서로가 뭘 가졌는지 탐색하고 서로 교환할 의사가 있는지 묻는 것, 나아가서 그것을 일대일로만 독점 계약을 맺을지, 다대다로 계약을 맺을지 정하는 것, 그게 일루즈를 읽다 보면 그려지는 친밀함/로맨스/섹슈얼리티의 방식이다.
나는 틴더를 오래전부터 써왔다. 2018년 3월부터 사용해 왔으니 햇수로는 6년이 되었는데 이건 내 서울살이만큼 길며, 내 대학원 시기와 내 시계 취미생활 시기, 내 탭댄스 시기보다 길다. 그러므로 나는 이곳에서 나의 전여친, 전전여친, 전전전여친 그리고 물론 전전전전여친도 이곳에서 만났으며, 그 사이에 만났던 잠재적 연인과 잠재적 남남까지 합친다면 그 관계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내가 틴더를 온라인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으로 뭉뚱그리지 않고 명확하게 '틴더(tinder)'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이유는, 국내와 해외를 막론하고 그 이름이 가진 일종의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데이팅의 페이스북이랄까? 범블(bumble), 그라인더(grinder), 글램(glam)보다 더 유명하다고 느낀다. 또한 스와이프(swipe)로 친구/연인/파트너 고르는 방식이 갖는 오락성 또한 틴더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특징 중 하나이다. 즉, 전 세계의 누구나 쉽게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기며 즐길 수 있는 온라인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이 내게는 틴더이다.
내게는 페미니즘과 틴더가 떨어질 수 없게끔 연결되어 있다. 적어도 내가 페미니즘 공부를 시작한 시기(2015년 7월)는 내가 틴더를 시작한 시기(2018년 3월) 보다 빠르다. 그러므로 나는 이미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페미니스트로서 자신을 정체화하는 과정 중에 틴더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이 둘이 시기상의 겹침을 갖기보다 더욱 긴밀하게 엮이는 지점은 아래와 같다.
우선, 내가 '페미니즘'을 내 프로필에 걸어두었다. 셀링포인트? 맞다. 외모와 재력과 지력이 변변찮은 내게 그나마 남은 판매 포인트는 '페미니즘 공부하는 남자'였고, 이를 통해 소수의 틈새시장을 공략하려던 것도 맞다. 그래, 어딘가에는 내가 가진 재화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이라는 요소를 잘 봐주어서 나를 선택해 줄 사람이 있을지 몰라. 물론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사회성이 늘어나기도 했으니, 페미니즘이 그저 명목상의 요소라고 할 수는 없다. 실제로 많은 페미니스트 혹은 페미니즘 의제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시간을 보냈으니 말이다.
둘째로, 이건 내가 왜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시작했는가와 관련되어 있는데, 나는 이성애에 집착하는 나 자신을 설명할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페미니즘을 만났다. 나는 연애를 하지 못해 우울해했고 동시에 이러한 우울이 대체 왜 이렇게까지 강력하며 나를 옥죄는지 알고 싶었다. 페미니즘은 그러니까, 누군가가 남성이 된다는 게 무엇을 욕망하는 것으로 주조되는지를 밝히고, 그 과정에서 어떤 문제들이 나타나는지를 설명했다. 내가 가진 호기심이 '남성', '이성애', '섹슈얼리티', '성폭력', '성매매'로 이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틴더는 그러한 나의 욕망과 성찰이 맞물리는 장소이다. 나는 이성애자이고 여성을 욕망해. 하지만 동시에 이 욕망은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향하지? 음, 틴더에서 만나기에 좋은 사람은 아닐 것 같다.
마지막으로 다름이 아니라, 나는 틴더를 페미니스트 퀴어 트위터리안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렇다. 타임라인에 올리는 사진들을 통해 그들이 내게 먼저 틴더라는 것을 알려주었으며, 아니나 다를까 그네들도 틴더에서 나를 스와이프 했고 나도 그들을 스와이프 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욕망 속에서 공모했고 동시에 고민하고 성찰했으며 또한 다시 욕망했다. 내 페미 친구들 다 틴더 했다!
그렇게 해서 틴더남과 남페미라는 정체성은 적어도 온라인 데이팅 속에서 깔끔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이 글은 틴더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아니라, 틴더에서 사람을 만나는 나 자신에 관한 글이 되고자 한다. 나는 이 플랫폼을 어떻게 사용했고, 어떤 것을 잃고 얻었으며, 앞으로 어디로 향할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