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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리얼중독자 Jul 24. 2023

틴더에서 매칭이 되었다. 이제 어떻게 할까?

최고극락조(Lophorina superba)의 구애의 춤


틴더에서 매칭이 되었다. 이제 어떻게 할까?




틴더를 사용하는 패턴에 눈이 트였다면, 이제는 틴더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에서도 패턴이 보이기 시작한다. 음, 분명 이력서에 적어놓아도 매력적인 항목으로 보이지는 않겠지만, 나는 내가 체득한 이 통찰력을 십분 발휘하여 나는 매칭된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안녕하세용? :>" 귀여운 건 언제나 통한다는 나만의 방식으로.


이전 글에서처럼, 틴더에서 사람과 매칭이 되었다면 다음과 같은 특정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1) 인사를 한다
(2) 대화를 이어나간다
(3) 연락처를 나눈다
(4) 약속을 잡는다
(5) 계속 만난다
(6) 연인이 된다.
만약 내 목표가 (6)이라면 이 모든 과정이 마치 잘 맞물린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굴러가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 모든 과정의 각 요소는 시계 톱니바퀴보다는 <오징어게임>(2021)의 데스트랩 같은 거라 한 번만 삐끗해도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상대방은 이미 나를 대체할 수많은 사람들의 목록을 손에 쥐고 있기 때문이다. 어중이떠중이는 필요 없다. 다행히도 나 역시, 그만큼 많지는 않더라도, 나를 궁금해해 주시는 감사한 분들이 많기 때문에 또 다른 곳으로 쪼르르 달려가 알랑방귀를 뀐다(그리고 그 궁금증의 대부분은 '대체 '페미니즘'을 대놓고 써둔 이 남정네는 뭐 하는 놈이지?'같은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주일 내내 이 짓을 하다가 더 이상 알랑거릴 기력도 없이 널브러져 있다 보면 '대체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하고 나의 이성애적 욕망과 거리두기 시작한다.


아니, 무슨 소용이긴? 그냥 사람 만나고 싶은 거지. 천성이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누군가를 사랑하길 좋아하는 탓에, 나는 사람은 무릇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는 조언에 대고 "그것은 그저 신자유주의적 주체를 양산하는 개인화의 작동 결과일 뿐이며, 그런 말을 하는 너도 그거 못하잖아"라고 소리치며 사람들에게 쪼르르 달려간다. 결과적으로 무엇을 얻었는가 생각해 보면, 평소라면 만나볼 수 없었던 사람들과 나눈 수많은 즐거운 기억들, 사랑하는 사람과 주고받은 간질거리는 단어들, 그리고 여전히 내 곁에 남아 같이 틴더는 진즉 망했다며 깔깔거리는 친구들을 얻었다. 틴더 프리미엄 한 달 치, 부스터 몇 개, 슈퍼라이크 몇 개에 쏟아부은 돈이 적지 않지만 뭐, 그래도 괜찮은 소비였다고 치게 되는 것이다.


항상 이렇게 쿨하게 끝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대부분은 질척하게 끝나는 편이다. 틴더에서 사람을 만난 뒤 나타나는 특정한 패턴이 있다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아쉬운 내가 온갖 회유와 속임수를 동원하여 상대방에게 매달리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나는 제발 내 가치를 알아봐 달라며 온갖 재롱을 떨어보지만, 상대는 열정적으로 구애하는 수컷 극락조의 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극락조의 마음으로 심드렁하게 대꾸할 뿐이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더 내놓거나 아예 떠나거나, 아쉬운 쪽이 더 기를 써야 하는 게 이치 아니겠는가. 나는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구애의 춤을 펼치는 것이다.




루시 쿡은 《암컷들》(2023, 웅진지식하우스)에서 진화론과 생물학, 동물학에서 나타나는 남성중심성을 지적했는데, 내가 너무 좋아하는 이 책에는 이러한 동물들의 구애의 장면이 등장한다. 쿡은 동물의 수컷이 경쟁하고, 암컷은 경쟁에서 승리한 수컷에게 독차지된다는 기존의 인식을 비판한다. 암컷은 수컷의 행동 하나하나에 나름대로의 신호를 보내고, 수컷 또한 암컷이 보내는 이러한 신호를 제대로 감지해 낼 수 있어야 암컷에게 다가갈 수 있다. 그러니 결국 번식의 행위에 있어서 쌍방의 대화와 소통이 단순한 경쟁이나 과시보다 중요함을 나타낸다(아울러 이 책의 진가는 단순한 구애의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으므로 일독을 강력히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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