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cheron Constantin, Les Cabinotiers - Memorable places-圓明園 edition, 다이얼을 만드는 모습(TIMEFORUM)
오버홀 비용
옥스퍼드 언어 사전(Oxford Languages)에 따르면 오버홀(overhaul)은 기계·엔진 등을 분해해서 점검·정비하는 일을 말한다. 기계식 시계의 정비에서도 이 단어는 자주 쓰인다.
나는 지금까지 오버홀의 스펠링이 오버홀(overwhole)인 줄 알았다. 대충 시계 전체(whole)를 수리하는 거니까 오버홀(overwhole)인가, 했다. 지금까지는 이 무식함이 티 나지 않았다. 어찌나 다행인지, 하하.
기계식 시계 안에 들어가는 무브먼트(movement)는 일정한 부품들의 조립이다. 시계의 동력을 저축해 두는 태엽통이 있고, 태엽의 풀림을 일정하게 유지해서 태엽에 저장된 동력을 일정한 힘으로 바꾸는 부품이 있고, 그것으로 시침, 분침, 초침을 표현하는 부품이 있다. 그 밖에도 시계태엽을 움직임에 따라 자동적으로 조여주는 로터(rotor), 날짜와 요일을 알려주는 부품, 혹은 달의 주기나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문페이즈(moonphase)와 크로노그래프(chronograph)도 있다.
선대의 인간들은 디지털 기술 이전의 아날로그 기술을 정복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고, 덕분에 ‘어쩌다가 이런 기능까지 만든 거지’ 싶은 기술들이 40mm 직경의 공간 안에서 탄생하기도 했다. 여러 가지 부품들의 정교한 맞물림과 그것이 만들어주는 일정한 시공간. 시계가 갖는 공예품으로써의 성격이다. 그렇기에 한편으로 시계는 주기적으로 부품의 분해와 청소가 필요한 것이다.
최근 자금에 여유가 생겨 밀린 일을 처리하게 되었다. 그중에 시계의 오버홀을 맡기는 일이 있었다. 예전에 언급했던, 웃돈 주고 샀던 낡아빠진 론진 시계와 내가 소중히 간직하던 오리스 시계가 그 주인공이었다.
평일에 연차를 내고 종각역과 신촌역에 가서 본사에 시계를 맡겼다. 제 시계를 잘 부탁드립니다, 하는 마음으로 수리 접수서에 서명을 했고, 언제쯤 비용이 청구될까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 분명 시계가 내 손을 떠나 있는 4~6주간 많은 일들이 벌어지겠지.
오버홀은 기계식 시계의 관리에 있어서 필수적이다. 3~5년 주기로 이루어지는 시계 부품의 정기적인 분해, 청소, 조립이 있어야만 시계가 제대로 굴러간다. 그러므로 오버홀 비용은 기계식 시계의 구입에 필수적으로 따라붙는 비용이다.
오버홀 비용은 누구에게 맡기느냐에 따라 다르다. 을지로와 종로 쪽에서 오랫동안 시계를 수리해 오신 전문가분들과 새로 생긴 신생 사설업체도 있고, 시계 브랜드의 한국 본사에 찾아가 공식 수리도 받을 수 있다. 전자는 저렴하지만 퀄리티의 보장이 천차만별이고, 후자는 비싸지만 브랜드를 걸고 약속하는 서비스인 만큼 그래도 퀄리티를 좀 믿을 수 있다. 시계의 가격이 비싼 브랜드일수록 오버홀 비용도 비싸다. 내가 갖고 있지 않은 고급 시계 브랜드의 부품 하나 교체하는 비용을 들었는데, 내 론진 시계의 오버홀을 2~3번은 할 수 있는 비용이었다.
결국 시계의 구입과 관리에는 필연적으로 구매자의 소득 수준이 고려될 수밖에 없다. 이 공예품을 구입하고 관리하는 데에 있어서 내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러다 보니 내게도 일정한 구역이 생겼다. 이 정도 브랜드의 이 정도 시계는 내가 구입하고 계속 예쁘게 관리할 수 있다는 느낌으로 만들어진 구역.
이것이 취향의 한계를 나타내주진 않는다. 아쉽게도 경제적 계급을 아득히 뛰어넘을 수는 없고, 그렇기에 내가 더 비싼 시계를 가질 수도 없지만, 그것이 내 취향과 선호도를 결정짓는 일은 아닌 거니까. 내가 이 공예품에서 만족할 수 있는 영역과 기호가 어떤 것인지를 차근차근 알아간다.
얼른 시계가 왔으면 좋겠다. 시계 오버홀 비용을 또 홀라당 하고 다른 시계를 사버리는데 쓸까 봐 적금을 따로 들어서 아예 묶어버렸다. 올 한 해가 다 지나고 나서야 두 시계가 내 손에 들어올 것이다. 그 시간 동안 내 시계함의 두 자리를 비워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