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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판적일상 Nov 01. 2018

젊음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걸까?

젊음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다지만, 젊음을 돈 없이 누리기는 어렵다. 

거대 기획사를 운영하고 있는 한 기획사의 사장이 강연 중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가 다 가진 것 같아도,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바로 여러분의 젊음입니다


돈과 명예를 다 가진 본인 조차도 젊음은 가질 수 없음을 이야기 하며, 청년들에게 열심히 살아가라는 용기와 희망을 안겨주기 위한 취지의 발언이었겠지만 단언컨대, 대부분의 청년들은 이 얘기에 용기와 희망을 얻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젊음은 돈으로 살 수 없다. 하지만 여러 고용시장을 거쳐가며, 또 주변의 많은 어른들을 상대해보며 느낀 건 자신의 젊음은 몰라도, 타인의 젊음은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가질 수 없는 그 젊음은 '젊다'는 이유만으로 얼마든 소모되어도 괜찮은 것이라 여기는 것 같다는 것도.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이 말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내가 근무했던 구로디지털단지역에는 수많은 회사들이 모여있는데, 그곳은 7시, 8시가 훌쩍 넘어도 불빛이 환해서, 야경이 아름답다. 그리고 그 불빛 아래엔 오늘도 젊음을 소모당하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많이 존재할까. 


젊음이 좋은 것은, 젊어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생애 동안 가장 튼튼한 체력을 가지고 있을 시간이므로 여행을 통해 이곳저곳을 누비고, 많은 것을 배울 수도 있다. 친구들과 어울려 밤을 새워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수많은 청사진을 그려보기도 할 수 있다. 새로운 사람과 알아가고 수많은 사랑도 해보고, 이별도 겪어볼 수 있는 이 무한하고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누릴 수 있다는 것이 그러하다.


이미 부와 명예를 가진 이들이 말하듯, 이 젊음은 돈으로도 살 수 없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그런데 '젊음이 좋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이 많은 이유들은, 대개 돈이 없으면 누릴 수 없는 것들이라는 것이 뼈아픈 현실이다. 






월세를 내기도 빠듯한 처지일 많은 청춘들은 당장의 현실을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해 돈을 버는 데에 젊음을 소모하느라 누릴 수 있는 게 그다지 많지 않다. 퇴근 후 이미 깜깜해진 바깥 풍경 아래, 방전되어버린 몸을 침대에 녹인 채로, 분명 다음날 피곤할 것이 분명함에도 새벽이 다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 하고 별 거 아닌 일들(보통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일 따위의)을 하며 깨어있는 채로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보내려고 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수많은 아까운 시간들 중, 온전히 내 시간이랄 게 별로 없는 게 보통의 청춘들이다. 그런데 일찍 잠에 들어버리면 그 조금의 내 시간마저 다 빼앗겨버리는 기분이다. 젊음을 이렇게 소모하고 나면 뭐가 남는가. 서울 하늘 아래, 진짜 내 집이라도 한 채 가질 수 있을까 자조적으로 묻기도 한다. 


젊음을 소모한 대가로 겨우 집 한 채라도 얻으면 다행이지만, 그것마저 어렵다.(서울이라면 더더욱) 또 그리해도 행복할 수 있을런지는 장담하지 못 하겠다. 


어쩔 때는 내 불쌍한 젊음이 너무나도 아까워서 눈물이 날 거 같을 때도 있다. 지금 이 시간이 돌아오지 않을, 가장 좋은 한 때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젊음을 누릴 수가 없는 처지가 안타까워 자기연민에 빠지는 것이다. 


이런 자기연민에 대해 "요즘 청년들은 배가 불러서 그렇다"고 말할 사람들도 많을 걸 안다. 다분히 비생산적이고, 무쓸모한 감정이라는 점 또한 인정한다. 그렇지만 내가, 지나가고 있는 내 젊음을 아까워하지도 못해보다가 애도를 표하게 될 때가 된다면 그건 너무 슬플 거 같은데 어떻게 하나.





 

배고픈 지난 세대는 일자리의 질이나, 업무 강도와는 상관없이 일을 해 돈을 버는 게 더 중요했다. 젊음을 소모하면서도 그게 다 사서하는 고생이라 여겼다. 굉장히 힘들었을 것임을 알고, 존경해마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해온 이들이 있다고 해서 시대가 변했는데도, 잘못된 것을 또다시 계승해야할 이유는 없다.


별 게 아니다. 그저 '지나치게 일에 치중되어 젊음을 소모시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사회에서 이제,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어 개개인이 행복을 추구하고, 젊음을 누릴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인간답게 살아보자고.





이런 면에서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정부의 '청년일자리 정책'이 다소 아쉽다. 물론 절대적으로 '일할 자리'의 양이 늘어야한다는 것도 중요한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재정을 투입해 청년과 중소기업에 대한 직접지원 규모를 늘리는 식으로 일자리의 절대적인 양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본질적인 문제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수십대 일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취업에 성공하는 청년들 조차 이직을 하거나, 퇴직을 거듭하는 이유부터 이해해야 한다.





올해 잡코리아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어렵게 들어간 첫 직장에서 현재까지 계속 근무하는 직장인은 20%에도 미치지 못해 이직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결과 응답자중 ‘첫 직장에 계속 근무 중’이라고 답한 사람은 15.5%에 그쳤으며, 첫 직장에서 퇴사한 시점은 ‘2년 이상 근무후 퇴사’가 28.4%로 가장 많았고, ‘1년~1년6개월(23.0%)’‘6개월~1년미만(20.9%)’ 이 뒤를 이었다.


첫 직장 퇴사 이유에 대한 질문에서 ‘더 나은 대우를 받기 위해’ 라는 응답자가 28.7%,‘다른 일을 해보기 위해’가 26.8%, ‘직무가 적성에 맞지 않아(19.5%)’‘더 이상 배울 점이 없다고 생각돼서(18.8%)’ 등의 답변이 있었다.


즉 취업난으로 우선 취업부터 했지만, 직장 근무 환경 등 일자리 '질'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이직과 퇴직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는 '젊음'을 소모당하지 않으려는 청년들의 마지막 발악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청년들이 젊음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근본적 문제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






성공한 한 어른이 청년들을 향해 다시 "여러분의 젊음은 돈으로도 살 수 없다. 그러니 젊음을 담보로 열심히 나아가라"고 말했을 때, 청년들이 "그래, 나는 누릴 수 있는 젊음이 충분하니 행복하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젊음을 원동력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회. 진정으로 청년들에게 젊음이 '돈주고 살 수 없는 값진 것'으로 여겨질 수 있는 사회. 내 지나가는 젊음이 아까워 눈물 짓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회가 도래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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