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남녀공학을 향한 교장의 반짝이는 실험

내년엔 합반 절대 안 돼요!라고 외치는 아이들에게

by 해림


폭염이 여전한 8월 중순, 기후 위기를 실감하며 이른 개학을 맞이했다.


미친 듯한 더위를 뚫고 학생과 교사 모두가 무탈하게 제자리로 돌아왔으니, 교장으로서 더 바랄 것이 없다.


개학 첫날부터 쉬는 시간마다 교실을 여러 번 돌아보았다. 방학 전, 약속이라도 한 듯 남학생 학급에서 잦아졌던 사소한 다툼과 이전에는 없던 학폭 사건들이 마음의 짐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는 AI 시대를 논하는 21세기에 '남녀 학급 분리 운영'이라는 기묘한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60년 전 남자 중학교로 출발해 2002년 남녀공학으로 바뀌었으나, 2012년 당시 교장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다시금 남녀 분반의 성벽이 쌓이고 말았다.


이곳에 부임했을 때, 시대착오적인 남녀 분반 구조를 마주하며 마치 조선시대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고교학점제 시행 이후 고등학교조차 이동수업으로 남녀 분반이 무의미해진 추세인데, 중학교에서 이런 폐쇄적인 운영을 지속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교장이 복도를 순시하며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었다. 나는 교장실에서 선생님들과 협의회를 가졌다. 현장의 목소리는 절실했다.


남자 반 담임은 도저히 맡기 힘들다는 호소부터, 3학년 남학생들을 한 층에 몰아두어 발생하는 심각한 문제점들이 쏟아졌다. 선생님들은 그동안 꾸준히 합반을 건의해 왔지만 실행되지 못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는 즉석에서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내년 전면 합반을 목표로 하되, 우선 2학기부터 남녀 학급을 '교차 배치'해보자는 것이었다. 여학생 학급이 바로 옆에 있으면 남학생들도 조금은 정숙하고 매너 있게 행동할 것이라는 전략적인 판단이었다.


선생님들은 2학기부터 모든 학년을 남녀남녀 순서로 배치하기로 뜻을 모았다. 방학 전 다양한 상황을 고려해 새로운 배치도를 만들었고, 방학식 날 미리 이사를 단행했다. 학생들이 방학의 여운에 젖어 어벙벙할 때 바뀐 교실로 들어가면 저항이 적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며칠 동안 복도를 돌아다니며 아이들의 반응을 살폈다. 예상대로 아이들은 쫑알쫑알 불만을 쏟아냈다. 여학생들은 남학생이 쓰던 교실이 더럽다고 아우성이었고, 남학생들은 여학생 교실이 더 더럽다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내년에 합반하면 절대 안 돼요!"라며 거칠게 고함을 치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오히려 확신을 가졌다.


서로를 향해 이유 없는 적대감을 나타내는 모습에서, 여성 혐오와 남성 혐오의 불씨가 교실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멀리서 추측하며 미워하기보다 가까이서 생활하며 서로 이해하고 예의를 갖추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다짐했다.


실제로 교실 배치를 바꾸고 나니 복도에서 남학생들의 심한 장난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스텝 바이 스텝이다. 이번 학기 동안 서로 근접하여 생활해보고 나면, 내년에는 한 교실에 남녀를 함께 배정하는 합반도 훨씬 수월할 것이라 확신한다.


나의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본다. 이름만 공학이었을 뿐, 교문을 들어서면 좌우 건물이 나뉘어 하루 종일 마주칠 일이 없었다. 유일하게 매점에서나 이성을 만날 수 있었던 그 열악한 환경에서도 재주 있는 아이들은 알아서 연애를 꽃피우곤 했다. 사랑할 아이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고야 만다는 것을 이후 동창회 모임에서 알았다.


주변 학교들처럼 완전한 남녀공학을 만들려니 고려할 것이 많아 머리가 복잡하다. 우선 남녀 학급 교차배치하려고 방학 동안 화장실 가림막을 추가 설치하고 미세먼지와 에어컨 청소를 마쳤다. 몇몇 선생님들이 건네주신 "아이들이 겉으로만 저러지 속으로는 엄청 좋아한다"는 응원의 말씀에 용기를 얻는다.


이제 2학기 동안 아이들의 마음을 살살 어루만져 보려 한다. 겉과 속이 다른 학생들의 마음을 읽어내어, 내년에는 한 학급에 남녀가 고루 섞인 진짜 남녀공학으로 거듭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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