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지개(틀)가 필요한 시간, 교장의 복도 산책
“교장 선생님, 영희(가명)가 교통사고가 났답니다.”
영희가 배달 오토바이와 부딪쳐 넘어지면서 얼굴을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 학생은 아침마다 배가 아파 학교를 자주 결석했다. 이유는 친구를 사귀지 못해서 이다. 교장인 나는 영희 같은 위기학생들을 교장실로 불러서 자주 대화를 나눈다. 영희도 그중 한 명이고 그동안 교장실에 몇 번 왔었다. 교실에 들어가기 싫어해서 교장실에 앉혀두고 차와 쿠키를 내어주면 생글생글 웃으며 내가 묻는 말에 솔직하게 술술 답했다. 나 혼자만의 착각인지 몰라도 나와는 조금은 래포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학교에 나오는 게 죽기보다 싫다더니, 지금은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처지다. 영희가 교통사고로 인해 며칠 결석하고 나면 영영 학교와 담을 쌓을까 걱정인데 영희는 병원에 있는 게 차라리 속이 편하지 않을까 추측했다. 가벼운 찰과상이라니 그건 다행이다.
오늘은 영어 듣기 평가가 있는 날이라 오랜만에 복도를 순시했다. 평가가 시작된 1학년 복도는 영어방송 소리만이 들렸다. 한 층 아래 2학년 쪽 복도로 내려가니, 신임선생님 한 분이 복도에서 두 명의 학생을 지도하고 있었다. 슬쩍 대화를 들어 보니 두 놈은 수업 방해와 지도 불응으로 불려 나온 듯했다. 나는 오도 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서 그 장면을 지켜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한 달 전에도 담임인 바로 그 선생님을 힘들게 해서 교장실까지 불려 왔던 ‘독수리 오 형제’ 중 둘이었다. 교장인 내가 뒤에 서서 쳐다보는 걸 힐끗 보면서도, “아닌데요?”, “언제요?” 하며 앞뒤 안 맞는 변명을 천연덕스럽게 해댔다.
하지만 선생님은 침착하게 아이들의 잘못을 차례로 짚어가며 지도하셨다. 얼마 전 힘들다며 교장실에 오셨을 때보다 훨씬 노련하고 당당해지셨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그들 곁을 지나왔다.
이 학생들은 방학 전에도 수업방해 문제로 부모가 학교에 불려 왔었고 교장 앞에서 눈물까지 흘리며 사과하고 갔는데 아이들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저렇게 말귀를 못 알아듣고, 지속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되풀이하는데 도대체 언제까지 저들을 지도해야 할지, 보람이 있을지, 선생님들 속만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건 아닐까 싶어 마음이 답답했다. 독수리 오 형제 중 또 한 명은 반친구를 괴롭혀서 며칠 전 학폭 신고를 당했고, 학폭의 지속성 측면에서 학교장 자체해결로 끝나지 않을 듯하다. 현재 피해 학생과 분리 조치되었고 빈 교실에서 따로 온라인 수업을 받고 있다. 잘못은 잘못이고 혼자 떨어져 수업을 받는 있는 게 마음이 짠해서 교실을 들여다보았더니, 녀석은 교장을 알아보고 아는 체하며 싱글벙글했다. 이 놈은 정말 철딱서니 없게도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는 넓은 교실에 피서라도 온 듯이 세상 편한 자세로 앉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학교라는 교육현장 내에서 이런 장면이 끊임없이 무한 반복된다. 학생들은 잘못을 저지르고 교사는 지도하고 아이들은 또 잘못하고 교사는 용서하고 또 교육한다. 인간 역사의 시작과 동시에 시작된 아이들을 키우는 사명을 부여받은 학교와 교사는 교육의 사이클을 부단히 돌린다. 그러나 교사들은 가끔 하던 일을 멈추고 근원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된다. ‘나의 교육으로 내 아이들이 성장할까? 학교의 교육으로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학교나 교사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들은 타고난 천성대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은 결국 가정교육이 결정하고 학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게 아닐까. 이렇게 나는 지난 40여 년의 교직 생활 동안 끊임없이 나의 교육관 밑바닥부터 뒤집어보는 일을 반복해 왔다.
문득 공자의 가르침을 떠올려본다. 말에는 채찍이 필요하고, 굽은 활에는 그것을 바로잡을 틀인 '도지개'가 필요하듯이, 사람에게도 방자한 성격을 바로잡기 위한 가르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사람은 틀을 잡고 갈아야 비로소 유용한 재목이 된다는 그 오래된 문장을 다시금 읊조려본다.
열정을 다해 아이들을 지도하다가 조금씩 변하는 모습에 벅찬 보람을 느끼기도 하고, 때론 다시 만난 아이가 도로아미타불이 되어 버린 모습을 보면 좌절을 맛보기도 한다. 그것이 지난 40년의 일상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스스로를 위로하며 복도를 걷는다. '그래도 나의 진심이 저 아이의 마음 어딘가에는 쥐꼬리만큼이라도 남아 있겠지. 훗날 삶의 중요한 순간에, 문득 그때의 가르침을 떠올려 줄 날이 오겠지.'
그 가느다란 희망 하나가 오늘 고단한 선생님들을, 그리고 늙은 교장을 다시 교실로 향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