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빛 카네이션 뒤에 가려진 생의 무게

by 해림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어머니, 언제 퇴근하시나요?” 오후에 큰사위에게서 카톡이 왔다.


그 시각 나는 학교에서 조퇴하고 나와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몇 주 전부터 등짝에 커다란 돌덩이를 얹어놓은 듯한 통증 때문에 도저히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한 시간 반을 기다려 만난 이는 의사가 아닌 간호사였다. 증상을 꼬치꼬치 묻는 간호사의 태도에 괜한 분노가 치밀었다.


마침내 나타난 의사는 사진을 찍어보더니 목 전문의를 따로 만나보라고 권했다. 예전 같으면 고분고분 넘겼을 일들에 자꾸 화가 나는 걸 보니, 나도 나이가 많이 든 모양이다.


"너희가 어른이 되면 오른쪽 눈과 왼쪽 눈을 따로 진료받는 세상이 올 거다."


고등학교 화학 선생님의 예언은 틀리지 않았다. 정말 그 말대로 어깨 따로, 목 따로다. 팔꿈치와 손목까지 찌릿한 이 몸을 온전히 고치려면 대체 몇 명의 의사를 더 만나야 하는 걸까.


통증을 억누르며 저녁을 먹고 있을 때, 카네이션 바구니를 든 손녀와 딸 부부가 등장했다. 작은 꽃바구니 하나에 병원에서 쌓인 짜증이 씻은 듯 사라졌다. 우리 부부는 약간 과하다 싶을 정도로 기쁨을 표현했다. 그것이 조부모의 의무이자 즐거움이니까.


손녀는 목욕까지 하고 갔다. 나는 바지를 걷어붙이고 목욕탕 의자에 앉아 아이의 수발을 들었다. 그런데 아이가 내 다리를 씻어주겠다고 나선다. 샴푸를 짜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종아리를 문지르고 물을 끼얹어준다.


"할머니 안 아프게 해 줄게." 비눗물 놀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앙증맞은 손길이 닿을 때마다 어버이날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효도를 받는 기분이 들어 가슴이 벅차올랐다.


문득 구순의 친정어머니가 떠올랐다. 얼마 전, 어머니는 보행기를 밀고 무단횡단을 하다 경찰에게 제지당하자 길바닥에 주저앉아 떼를 쓰며 소변 실수까지 하셨다. 집으로 모셔 온 어머니는 약 기운 때문인지 몸을 더 가누지 못했다. 나는 어머니를 목욕탕에 앉혀드리고는 물만 받아놓은 채 그대로 나와버렸다.


나의 간곡한 부탁도, 요양보호사의 만류도 뿌리치고 기어이 먼 화실로 향하다 사고를 치는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어머니의 몸을 직접 씻기는 일은 손녀를 목욕시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중노동이다.


거동이 불편한 어른의 몸을 씻겨드리는 일은 힘이 들기도 했지만 갈수록 무너져가는 어머니의 벗은 몸을 보는 게 더 힘이 들었다.


노인은 다시 아기가 된다지만, 고집을 꺾지 않는 어머니 앞에서 예순의 딸은 자꾸만 서글픈 거리감을 느낀다. 어머니가 한없이 불쌍하다가도, 가끔은 심장이 약한 내가 어머니보다 먼저 쓰러질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과 분노가 치밀었다.


그래서 요즘은 나 먼저 살아보겠다고 '이기적인 자기 방어의 벽'을 세운다. 아버지가 젊은 나이에 병이 드신 후, 가족을 부양하느라 고군분투하던 어머니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달려온 세월이었다.


하지만 그 미션이 이제는 한계치에 다다랐고, 이러다가 오히려 내가 불효자가 되고 말겠다는 공포가 닥친다. 그럴 때면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자고 다짐하며 차갑게 식어가는 마음을 애써 다독인다.


오늘 어버이날, 손녀에게 깜짝 효도를 받는 할머니인 내가, 동시에 기억을 잃어가는 시어머니길 위를 헤매는 노모의 뒷모습을 생각하는 딸로서 서 있다.


핑크빛 카네이션 뒤편에 가려진, 이 서글프고도 무거운 생의 고리들을 어찌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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