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다고 애가 알까?" 콧웃음 쳤던 내가 틀렸다
지난 주말, 30개월 된 손녀가 우리 집에 왔다. 햇수로 따지면 네 살이다. 그런데 이제는 환갑이 넘은 나와 아이가 서로 '말이 통한다'니 놀라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로 떼를 써서 하고 싶은 걸 관철하려 하더니 어느새 정확한 발음과 풍부한 어휘로 제 생각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과속 성장을 지켜보며 나도 과속으로 늙어버린 걸 체감하며 세월의 속도감에 번쩍 놀란다.
그날은 딸과 사위가 오랜만에 영화를 보러 간 사이, 남편과 나는 손녀와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아이는 할아버지가 목소리를 바꿔가며 읽어주는 그림책에 푹 빠져들더니, 쌓아둔 책으로 저만의 울타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소중한 애착 인형과 장난감을 그 안에 모아두고 안정감을 만끽하려는 듯했다. 나는 울타리를 침범하려는 늑대 흉내를 내며 장난을 쳤다. "할머니 늑대가 잡아먹으러 간다!"는 위협에 아이는 폴짝 뛰어와 내 품에 안기며 외친다. "할머니 늑대, 그러지 마!" 라며 침입자조차 포옹으로 녹여버리는 아이의 순수한 놀이가 즐겁기만 했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 그림책 집을 정리하자고 하니 아이는 아쉬운 기색을 내비쳤다. 나는 차분히 설명했다. "집에 가면 책이 많으니까 거기서도 이렇게 놀 수 있지? 다음에 할머니 집에 오면 또 같이 만들자." 그러자 아이는 "응, 다음에 또 이렇게 해!"라며 단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토록 수용적인 태도를 보이니 신기하면서도 대견했다. 둘째를 임신해 입덧으로 고생 중인 엄마를 본능적으로 배려하는 걸까.
대학병원 레지던트인 딸은 입주 육아 도우미를 1년 6개월 넘게 고용했었다. 매달 300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지만, 덕분에 딸은 병원 일에 집중할 수 있었고 퇴근 후에도 아이에게 쏟을 기력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공중 보건의인 사위는 칼같이 퇴근해 가족의 식사와 아이의 양육을 주도한다. 친정엄마로서 큰딸의 수월한 육아 여건을 보면 다행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라 부럽기도 했다.
두 딸을 기르며 교사로 일하던 나는 피골이 상접한 처참한 몰골로 출퇴근을 반복했다. 하루 종일 학교에서 시달리다 저녁에 퇴근하면 산더미 같은 집안일이 나를 기다렸다. 당시 대부분의 남편이 그러했듯 나의 남편도 회식과 야근으로 늘 늦었고, 육아와 가사는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낮에는 이웃집 아주머니, 시어머니, 그리고 꽤 오래 미혼인 시누이에게 큰아이를 맡겨서 키웠다.
내가 퇴근하면서 아이를 데리고 오면 바로 아기띠로 둘러업고 집안일을 해치우느라 아이와 눈을 맞출 여유조차 없었다. 아이가 말을 못 하니 그렇게까지 세세한 대화는 필요 없는 줄 알았다. 내 등에 업힌 아이는 엄마의 얼굴 대신 내 등짝만 바라보다 잠이 들곤 했다.
지금 생각하니 아이에게 너무도 미안한 일이다. 어쩌면 그 당시 나는 일의 우선순위를 몰랐던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아이를 바라보고, 눈을 맞추고, 사랑스러운 대화를 나누어야 했다. 하지만 내가 아니면 해줄 사람이 없던 집안일을 해치워야 게 급선무라 여겼다. 그래서 아이를 등에 없고 고작 체온을 나누며 천기저귀 빨고, 젖병소독하고, 저녁 식사준비까지 북 치고 장구 치듯 해내는 게 잘하는 짓이라고 여겼다. 차라리 어느 정도의 선에서 집안일을 포기하거나 그 일을 대신할 사람을 고용했어야 했는데 어떤 선택을 하기에도 나의 정신적 물질적 여건은 녹녹지 않았다.
딸 부부라고 육아 스트레스가 왜 없겠는가. 아이 키우기 힘들어 결혼도 출산도 포기하는 세상인데, 둘째까지 품고 씩씩하게 큰아이 육아를 해내는 그들이 대견하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그들의 '대화법'이다. 그들은 아이가 갓난아기일 때도 알아듣지 못할 거라 치부하지 않았다. 눈을 맞추고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으며, 안 되는 이유를 조목조목 알려주었다. 아이가 고집을 부려도 단호하게 설명한 뒤 스스로 판단할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미숙한 엄마 출신인 나는 '저런다고 애가 알아먹을까' 싶어 콧웃음을 쳤는데 내 생각이 틀렸다. 아이는 부모의 말을 모두 듣고 이해하고 있었다. 부모가 인내심을 갖고 대화로 조물조물 빚어낸 아이는, 억지로 가르치지 않아도 무엇을 해야 할지 스스로 알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한두 번 말하면 알아서 배우고 따라와 주길 성급하게 기대했었다. 바쁘고 힘들다는 핑계를 대며 어린아이가 엄마인 내 사정을 봐주겠지라며 양육 기본인 '대화'와 '기다림'을 소홀히 했다. 쪽팔릴 정도로 무지했던 엄마였다는 사실을 이제야 절실히 깨닫는다. 손녀의 맑은 눈망울과 사근사근한 대답을 들으며, 할머니가 된 후에야 나는 뒤늦은 반성문을 마음속으로 써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