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딸이라서 행복하냐고 묻는 당신에게

단감처럼 달콤한 딸의 존재, 그 이면의 묵직한 돌봄에 대하여

by 해림

그 달콤한 이름 뒤에 숨은 딸의 무게

큰딸의 가족 단톡방에 반가운 소식이 올라왔다. "둘째 카키는 딸이랍니다."


가을에 태어날 아기의 태명은 '카키'. 단감의 학명(Diospyros Kaki)에서 따온 이름이란다. 늦가을 가지가 휘어지도록 매달려 주황빛 속살을 뽐내는 단감. 아삭한 식감 뒤에 터지는 그 달콤한 단물 같은 아이가 오고 있다니, 할머니로서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다. 게다가 카키는 내가 평소 즐겨 입는,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색깔이기도 하니 묘한 인연이다.


나로 말하자면 남자형제만 3명있는 외동딸이다. 그래서 둘째 딸이 처음 말문이 터져 큰딸에게 "언니야"라고 불렀을 때, 나는 주책없이 왈칵 눈물을 쏟았다. 내 평생 한 번도 입 밖으로 내보지 못한 그 다정한 호칭을 딸의 목소리로 듣는 순간, 형용할 수 없는 대리만족과 감격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절, 딸을 둘 낳았다는 것은 지금처럼 칭송받을 일은 아니었다. 2대 독자 외아들이자 여형제만 다섯인 시댁집안의 며느리였던 나는,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으나 스스로 '아들 낳기'라는 미션을 부여했었다. 결과적으로 아들은 없었지만, 나는 우리 딸들이 서로 의지하며 귀하게 자라는 모습에 충분히 행복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이 변해 '딸 선호 사상'이 팽배해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딸은 집 한 채 안 해줘도 되니까", "나중에 아들보다 부모 심정을 더 잘 알아주니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노년에 며느리 눈치 안 보고 온갖 뒷수발을 맡길 수 있으니까"라는 계산이 그 이면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남자 형제 셋 사이에서 자란 외동딸로서, 구순이 된 친정엄마의 뒷바라지를 자발적으로 도맡아 하고 있다. 경제적 지원은 형제들이 한다 해도, 노인에게 필요한 사소하고 집요한 돌봄은 오롯이 내 몫이다.

냉장고 속 음식이 상하지는 않았는지, 보행기가 잘 구르는지 ,안경다리는 멀쩡한지, 보청기 충전은 되었는지…. 열거하자면 끝도 없는 이 촘촘한 '뒤치다꺼리'는 나의 스케줄을 점령하고 나를 억압한다. 최근 요양병원으로 향하신 시어머니와 병원에 입원하신 친정엄마를 보며, 나는 우리 부부의 노년을 근거리에서 목격하고 있다.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해야 하나?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대비해야 하는가?'


지난 일요일, 복잡한 머리를 식히러 경주 보문단지 호수를 걸었다. 수양버들 그늘 아래 앉아 호수를 바라보며 나의 노년을 상상해 보았다. 남들이 보기엔 번듯하게 잘 키운 두 딸을 둔 행복한 엄마지만, 누군가 내게 "당신은 딸이라서 진정 행복하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저 옅은 미소로 "노코멘트"라 답하고 싶다.


태명 '카키'처럼 아삭하고 달콤한 존재인 딸. 하지만 그 달콤함을 유지하기 위해 딸들이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를 알기에, 새로 올 손녀에게 마냥 축하만을 건네기엔 할머니의 마음이 조금은 아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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