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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Feb 06. 2022

이 주의 시들-연락

한 달에 한 번은 해라. 우리가 남도 아니고.


안녕하십니까, 제이한입니다. 연락을 주제로 한 이주의 베스트 시간이네요.


연락은 상대에게 소식을 알리는 일입니다. 가벼운 안부부터 시작해서 중요한 경조사, 자문 등 사유가 다양한 편이죠. 똑같은 내용의 연락이라도 누가 했느냐, 누구한테 했느냐에 따라 갖는 의미가 달라집니다.


따라서 '연락'이라는 소재가 글에서 나타날 땐 마음이 쓰이는 상대와 주고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점은 예전에 주제로 선정되었던 '선물'과 비슷한 면이 없잖아 있네요. 선물의 중요도 역시 어떤 사람한테 하는가에 달렸으니까요.


이제 베스트에 오른 글들을 한번 살펴봅시다. 과연 어떤 연락들이 목록을 채웠을지.




1. 시체님의 '열락'


https://m.fmkorea.com/4292356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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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간 다른 공간을 잇는 일련의 연결


온기를 내뱉는 기계라는 역설



싱거운 안부와 보통의 안녕임에도


그나마 가공 덜 된 너의 육성이 반갑다



서로가 들리는 순간 열락의 꽃 피우고


어서 향기에 취해 중독되어야한다



기약 없는 기다림도 한껏 설렐 수 있게


다음 열락까지 되도록 오래


/////////////

시평: 연인과의 통화, 혹은 그런 징조가 보이는 상대와의 통화는 시간의 양에 비해 훨씬 더 높은 질적 만족을 가져다 줍니다. 그야말로 기쁨과 즐거움, 열락이지요.


연락을 통해 빠져드는 열락의 바다는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서로 다른 공간에 있는 두 사람을 하나로 농밀히 이어지게 합니다. 조금 있으면 전화를 끊고 잠자리에 들어야 하겠지만 그것 때문에 가슴이 아프진 않습니다.


다음에도 이와 같은 기쁨을 맛볼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잘 읽었습니다.



2. 키아로스타미님의 '컬러링'


https://m.fmkorea.com/4278130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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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불은 꺼지지 않는다



두 사람의 형상을 기억하는 침대는  


내가 잠에 들기만을 기다리다


기어이 악몽을 풀어낸다



얄궂은 일이다


며칠이나 같은 날을 보내고 있다


밖을 나서기엔 왼쪽 옆구리가 너무 가볍다


혹 찬바람에 날아가진 않을까, 하는 염려마저


홀로서 곱씹기엔 심심한 일이다



어제는 욕조에 가득 물을 받고선 잠들었다


물이 식기 전까지 나는 완전하다


내 무게는 너무 가벼워


넘치는 물은 없다시피 하나


때론 수도관의 녹을 다 벗겨 없앨 정도로


무겁고 싶은 마음이다



잠결에 언뜻  


낯익은 음악이 들린 것도 같다


오랜만에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반가워서


꿈인줄도 모르고 글쎄 왈칵 울어버렸다



욕조의 농도는 짙어져만 가고


잔뜩 늘인 컬러링은 이제 재생 되지 않는다



네 수신 목록에 나를 남기고 싶다


네가 나처럼 가볍지 않도록



핑계을 안고선 침대로 돌아간다


자꾸만 등이 굽어 간다


이런 식의 무거움을 원한 적은 없다


옆구리의 실밥이 터지고


쏟아지는 음악



밤새 불은 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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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이 시의 화자는 이별의 진척도를 확인하기 힘든 상태에 처해 있습니다. 외적인 일상과 내적인 심리가 충돌하는 형태로요.


기억 속의 무수히 많은 페이지를 몽땅 들어낼 방법이 없어 상대를 그리워 하고마는 화자의 내적 심리. 그 심리는 잊을 수 없는 상대를 잊으려 합니다.


그리고 화자의 외적인 일상에선 점차 상대의 흔적이 사라져가고 있지요. 그나마 두 사람의 형상을 기억하는 침대가 있긴 하나, 그마저도 살풍경한 방의 분위기에 휘말려버렸습니다. 이 상황 속에서 화자는 흔적을 찾습니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상대의 수신 목록에 자신을 남기는 것도 좋을 겁니다.


모든 게 멈춘 공간에서 흔적만이 사라져가는 모순이 화자를 점점 미련의 끝자락으로 밀어세우고 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3. ::님의 '연착'


https://m.fmkorea.com/4283006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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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은 몇시간이고 허공을 맴돌았다



그러기를 수일이었다



이미 그에게는 알림이 수십번은 울렸겠지



사소한 마주침에 안절부절 못하고



심심한 농담에 웃기를 수십번



괜히 밥먹자고 불러낸적은 몇번이었나



그도 도착하지 않는 문자를 기다릴까



결국 홀로 남겨진 정류장에



목적을 잃은 문장만이 덩그러니 



도착한지 수년이지만



안타깝게도



난 아직도 네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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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부치지 못한 편지'의 현대적 대체재는 아마 '보내지 못한 문자'겠지요. 그 사람의 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은 어째서일까요. 본인만이 알 수 있는 문제지만, 그 본인도 모르겠다는 얼굴이군요.


만약 연착이 허용된다면 얼마정도까지가 상대의 허용범위 안일까요. 혹은 이미 멀찍이 떠났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화자가 마음을 접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전진도 후진도 못한 채 가만히 서 있기를 쭈욱.


허공을 맴도는 것은 손가락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헛도는 마음이 몸으로 나타난 것이었죠.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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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베스트는 어떠셨나요. 연락이라는 일상적 단어가 시어로써 어떻게 바뀌었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재밌을 듯 합니다. 한 주동안 오고갔던 연락들 중에서 글로 남길 만한 건은 몇개나 됐는지...같은.


다음 주에도 좋은 작품들과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모두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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