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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Sep 07. 2020

가로등을 주제로 한 시들

위로, 현대인들의 친구

안녕하십니까, FCB9입니다.

가로등을 주제로 한 이주의 베스트 시간이네요.



가로등은 열과 소리로 지친 거리를 비춰주는 밤의 위로꾼이라 생각합니다. 묵묵하게 몇시간동안 그 자리에서 불을 밝히고 있는 모습은 보고만 있어도 듬직해 보이지요. 현대의 적지 않은 사회인들은 늦은 새벽 집으로 가다 골목길 한켠에서 은은히 비치는 그 빛을 보며 많은 생각을 흘려보냈을 겁니다. 술에 취했다면 차갑고 까만 기둥에 몸을 기대보기도 했겠지요.


가로등이란 참 신기합니다. 낮에 불이 꺼진 걸 보고 '뭐가 이렇게 많이 세워놨대' 싶다가도 밤이 되어 한곳 한곳 환한 빛이 드리워지는 광경을 보면 이게 낮에 봤던 고철들이 맞나 하는 마음이 들죠. 비록 밤낮의 특수성에 따른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가로등은 따뜻하고 사람을 위해 제 한몸을 기꺼이 바치는 존재란 인식이 강합니다. 고고히 자리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는 점에선 나무와도 비슷하군요. 이번주 주제는 정말 따뜻한 주제였습니다. 


그럼 이번주 베스트에는 어떤 글들이 올라왔는지 함께 보도록 합시다.



1. 민트맛병아리님의 '가로등'


https://m.fmkorea.com/3056282768


////////


문득 

힘든 마음 달랠길 없어

홍합탕에 소주 한 잔하면


돌아가는 길 항상 기다리는

묵묵히 서있는 


야 반갑다


그래 오랜만이다


왜 이렇게 말랐냐

이름값도 못하는 놈

가로등 말고 세로등해라 세로등


그러는 넌

잘 지낸다는 놈이 얼굴이 비쩍 곯았냐

밥도 못 못먹고 다니냐


그 날

밤이 새도록 우리는 

기대어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


시평: 이렇게 보면 가로등은 현대인이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같아 보이네요. 술기운이 돈건지 외로움에 취한건지 시의 화자는 가로등에게 회포를 풀어놓고 있습니다. 아까 한잔 할 때 술친구가 있었으면 모를까, 여지 없이 포차에서 마시는 혼술이었기에 술잔은 비었지만 정작 이야기보따리는 그대로인 상태가 되고 말았네요. 


그래서 화자는 가로등을 친구로 삼았습니다.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도 물어보고 생활은 잘 풀리는지 걱정도 해줍니다. 가로,세로의 언어유희를 이용한 농담도 적절했고요. 


한편으론 조금 씁쓸한 시입니다. 

같이 술을 마실 친구 하나 없는 생활이 눈에 그려지니까요.


에휴. 사는게 뭔지...


잘 읽었습니다.



2. 고장난벽시계님의 '가로등'


https://m.fmkorea.com/3057874638


//////


불 꺼진 가로등을 더듬어 집으로 왔다.

능력이 있는 사람이건 없는 사람이건

존재만으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는 길에 뜨거운 열정을 등 떠밀듯 토해냈다.

뱉어내면 시원한 것 여름날은 그게 좋았다


/////


시평: 시와 화자가 말하고 싶은 바가 뭔지 한눈에 보이죠? 화자는 가로등을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사회 안에서 더 나은 인간으로 평가받기 위해, 더 좋은 대우를 받기 위해 하루하루를 무던히 노력하는 사람은 모두들 공감할 겁니다.   


어릴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소릴 들으면서 자랐는데, 어른이 되고나니 사회가 요구하는 목표치는 채우면 채울수록 한뼘씩 높아져만 갑니다. 그러니   하루종일 서 있으면서 불만 밝혀도 되는 가로등은 얼마나 부럽겠습니까. 


하지만 추하게 티를 내진 않습니다. 질투를 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자기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내일도 모래도 견딜 수 있는 열정이 남아있음을 여름날 밤에 토해냅니다. 억울한거죠. 내 가치는 겨우 이정도가 아닌데. 화자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3. 곤재님의 '가로등'


https://m.fmkorea.com/3065498123


////////


너는 이 밤을 

환한 대낮으로 

바꾸려 하지 않는다.

세상을 밝힐 뿐 아니라 

한밤을 오롯이 비춘다.

너는 이 밤에

명암(明暗)을 그려 넣는다. 


너의 밑에서

나는 길을 찾는 한편

네 영역 바깥의 

고요한 어둠을 보며

차분히, 

외롭고 슬픈 마음을 어루만진다. 


어둠 속에서

사방으로 뻗지 않고

희미하고 불안한 네 빛은 

내게 가장 솔직하고

편안히 와닿는 위로가 된다. 

너는 항상 그 자리 그대로

플라타너스 나무처럼 서 있다. 


///////


시평: 가로등이 아무리 밝다한들 밤의 어둠을 모조리 걷어낼 순 없지요. 맡은 소임을 다해서 암 뿐인 거리에 명을 새겨넣으면 가로등은 아마 만족할거라 생각합니다. 


이 시는 어둠과 가로등을 마음 속 부정적인 고민과 위로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위로는 고민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진 못합니다. 고민 중인 사람에게 건네는 일종의 응원같은 거라 결국은 당사자의 마음에 달린 것이라 할 수 있죠. 가로등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저 멀리 불빛 하나 없는 다리 밑을 비춰줄 순 없지만, 다리 위를 지날 때 행인들이 발을 헛디디지 않도록 밝고 은은한 빛을 내려줄 수는 있습니다. 끽해야 2~3미터. 좁은 골목길까지 가는 사람에겐 닿지 않겠지만 그래도 가로등은 날마다 거리를 비춥니다. 아예 완연한 어둠이 되어 아무도 못 지나가는 것보단 나으니까요. 


확실한 건 위로와 가로등은 사람에게 힘을 준다는 겁니다. 위로를 받은 사람은 고민을 풀어낼 수 있고 가로등 밑을 지나간 이는 더 멀리까지 용기를 내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거면 충분한거 아닐까요.

가로등의 존재의의는.


잘 읽었습니다. 


////////////


이번주 베스트도 이렇게 끝이 났네요.

개강 때문에 바쁜 한주였지만 창도갤러 여러분은 변함없이 이렇게 좋은 글들을 올려주셨습니다. 그 덕분인지 베스트를 쓸 때 괜히 기분이 좋더군요. 


그럼 다음주 베스트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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