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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애도가 필요했네

오늘 저녁메뉴는 죽음입니다

 사람에 대한 공부를 하면 할수록 사람마다 참 다르구나 하는 것만 느끼게 된다. 지구별에 사는 사람이 79억이 좀 넘는다고 한다면 79억의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대선을 보면서도 느꼈다.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사는데 다들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고 싸우고. 그냥 다른 사람은 다른 생각을 갖고 산다는 것을 인정하면 세상이 좀더 조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실과 애도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마다 상실이 일어났을 때, 자신의 상황이나 상태, 나이 조건, 그리고 고인과의 관계에 따라 모두 다른 절망을 겪고 애도의 방법도 회복해가는 과정도 달라진다.  

상실 당시 내가 몇 살이었는지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였는지. 고인과 가까운 관계였는지, 고인이 어떤 형태로 죽었는지에 따라서도 많이 다르다. 병이나 사고로 인한 죽음과 자살은 또 다르다. 병이라도 투병 기간에 따라서도 다르다. 


 애도 과정은 어떠하고 어떻게 극복해야 한다는 이론들이 과연 소용이 있을까 싶다. 그래도 상실에는 충분한, 그에 마땅한 애도가 있어야 하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연구를 많이 한 학자들의 얘기가 도움이 될까 하여 책을 읽는다. 죽음에 관한 책도 읽고, 애도에 관한 책도 읽는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죽음의 5단계 이론을 애도 과정에도 적용된다고 하는 학자도 있지만 맞지 않는다.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물론 그 순서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애도에는 맞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시한부가 된다거나 받아들이기 힘든 어떤 사건을 겪을 때는 5단계를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 수용으로 가기도 한다. 그러나 소중한 사람의 상실은 결국 수용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의사들이 쓴 죽음에 관한 책들은 주로 암환자들이나 시한부 환자들의 사례를 토대로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그런 죽음이 왔을 때 당황하지 않게 삶을 더 잘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나도 인생리셋 수업을 할 때 ‘당신의 오늘을 의미있게 만들어 드립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거기에 애도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 


 그러나 내가 시한부가 되는 것보다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고 힘들어하는, 애도가 필요한 사람들이 더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학에 관한 수업을 하면서 삶과 죽음에만 관심을 갖고 공부를 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나에게도, 많은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것은 죽음 이야기뿐만 아니라 ‘애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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