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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경미 Oct 24. 2024

사과에게 사과하다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을까. 매일 들여다보며 알뜰살뜰 챙기는 곳 가운데 단연 으뜸은 주방일 터. 귀퉁이에 자리했다지만 얼마나 무심했으면 반 평도 되지 않는 식탁에 놓인 것을 이제야 보게 된 걸까. 하루 이틀에 이토록 쪼글쪼글해졌을 리 없다. 사과라면 눈에 띄기가 무섭게 냅다 와사삭, 한 입 베어 먹었을 텐데. 푸석푸석 말라가는 몰골을 대하고 보니 먹고 싶은 맘이 온데간데없다. 

  던지면 탕, 튀어 올라 소리라도 지를 것 같은 오기는 어디에도 없다. 근사한 한 끼는 되지 못할지언정 누군가의 갈증에 목을 축여주기라도 해야 할 것을 이름값 하기는 이제 글렀다는 생각이 든다. 한껏 웅크린 채 주름만 자글자글한 사과 한 개. 버리려던 생각을 잊은 채 상념에 잠긴다.

  풋사과 같은 무렵이었다. 아무 일 아닌 것에도 풋, 웃음이 절로 튀어나오던 때였다. 우리는 부모라는 나무에 조롱조롱 매달려있기만 하면 햇빛이 들지 않는 날도 즐거웠다. 느닷없이 몰아치는 비바람이며 태풍 속에서 이제 막 영글기 시작하는 사과 알 같은 우리를 지켜내려는 나무의 몸부림 따위는 알 리 없었다. 

  동네에서 산 고개 하나를 넘으면 사과나무가 많았다. 그곳을 남사이라 불렀던 것 같다. 해마다 곡식과 사과를 바꾸는 일은 동네 행사 중 하나였다. 엄마가 사온 사과를 광주리에 부리면 사과향이 먼저 와락 안겨들었다. 사과자루를 머리에 이고 한 발 두 발 힘겹게 내디뎠을 걸음걸음에는 어린 자식들이 사과처럼 잘 영글기를 바라는 염원도 담겨있었을 것이다.

  고개 너머 사과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동그란 모양에 발그레한 빛깔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새콤달콤한 맛과 향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남을만한 존재였다. 사과는 그래서 여느 과일과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유년의 한 때가 알알이 박혀있기에 더한 모양이다. 사과는 나에게 잊히지 않는 추억이고 엄마의 사랑이다. 또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할 만큼 어려움과 맞닥뜨릴지라도 그것을 이기게 하는 어떤 힘의 결정체로 다가온다.      

  간절했던 바람들이 하늘에 닿기라도 한 걸까. 우리는 제법 잘 영글어 가는 듯 했다. 가을 어느 날엔가는 나무를 떠나 각지로 흩어지는 사과처럼 제 몫을 해내기 위해 우리도 하나 둘 집을 떠났다. 수년을 지나와 느닷없게도 버리려던 사과에게서 잊고 있었던 나를 보게 된 기분이다. 풋풋하던 웃음기는 사라지고 시들시들 주름져가는 내 앞에 놓인 사과, 다름 아닌 요즘 내 모습 같다. 

  태양이라도 집어 삼킨 듯 이글이글 타오르던 열정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누군가의 배를 채우며 한 가계를 일으켜보리라는 기세마저 사그라진 지 한참이다. 한 스푼의 쨈이 되어보겠다고 펄펄 끓는 냄비 속으로 뛰어들거나 날카로운 과도 앞에서 무모하리만큼 당당하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바닥에 눌러 앉아 더 이상 사과도 아니고 또 다른 사과나무가 되려는 꿈조차 무색하게 보인다. 

  순간순간 몰아치던 추위를 견뎌내고서도 열매를 맺지 못해 잎만 무성한 나무가 이런 기분일까. 흐름을 잘 읽으며 번듯한 집으로 옮겨가고 재테크에 성공한 이들이 내놓은 반짝거리는 잔고 앞에 서면 성실하게만 살아온 나는 바보가 되고 만다. 이룬 게 없는 쭉정이가 된 기분이랄지. 텅 빈 느낌에 사로잡힌다. 점점 표정을 잃어가는 나날이 늘어만 간다. 볼품없기로 치자면 지금 내 앞에 놓인 사과에 견줄까 싶다.  

  나는 사과를 아는 걸까. 왜 문득 이런 생각이 드나 싶다. 이브를 유혹한 사건의 사과가 있는가 하면 뉴턴에게 만유인력의 법칙을 가져다주어 과학의 흐름을 바꿔놓기도 한다. 화가 세잔과 마그리트에게는 모델이 되어 주었기에 지금까지 우리들의 마음을 울린다. 빌헬름텔의 화살 앞에서도 당당하던 때도 있었다. 한입 베어 먹은 채 폰에 찍힌 로고가 되어 4차 산업시대를 스마트하게 이끌기도 한다. 그뿐이 아니다. 난쟁이 집 백설 공주를 단번에 잠속으로 빠뜨린 악역마저 마다하지 않았다.

  이만하면 안다고 해도 되겠지 싶다가도 찜찜한 생각이 든다. 정말 나를 아니? 앞에 놓인 사과가 나에게 묻는 것 같다. 난 널 알아, 할 수는 있겠지만 난 널 다 알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시 가만히 사과를 들여다본다. 여전히 사과다. 꿈꾸는 사과다. 아니 사과나무가 되려는 꿈을 씨앗 속에 모우고 있는 사과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버려야할 만큼 쓸모없다고만 여길 뿐이었는데. 어쩜 내 앞에 있는 사과는 온몸으로 이 순간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자리바꿈한다.

  나는 제대로 아는 게 아니었다. 지금껏 지나온 나의 삶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마치 다 아는 양 내 오만함은 많은 무례를 불러들였을 것 같다. 되돌아볼수록 사과할 일투성이다. 사과와 함께했던 추억들은 아랑곳없이 까맣게 잊었다. 겉모습이 전부인양 쪼그라든 모습만 눈에 들어왔다. 버릴 생각만 했을 뿐, 그만의 처지를 보지 못하고 말았다. 쭈글쭈글 주름져 가는 주름 사이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음표처럼 자리하고 있어 슬픔이든 기쁨이든 다 노래가 되는 것 같다. 사과는 사과대로 나는 나대로의 삶이 다 그러할 것이다. 그 울림은 깊고도 넓어서 쉬이 가늠할 수조차 없을 만큼이리라.   

  사과하고 싶은 심정이다. 지금 앞에 있는 사과는 물론 표정 없이 보낸 내 지난 나날들에게도 그렇다. 쪼글쪼글한 사과를 눈으로 쓰다듬는다. 사과나무를 꿈꾸느라 온 힘을 다해 몸부림친 흔적이 주름인 것을 이제야 본다. 허허로움을 탓하던 내가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동안 밖은 꽃이 피어 이 하루를 환히 밝히고 있다. 볼품없는 게 아니라 제대로 볼 품을 갖지 못한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랄뿐이다. 

  사과는 소멸과 생성을 동시에 끌어안고 순리를 따르는 한 알의 우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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