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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경미 Oct 24. 2024

새장 속 새는 갇히지 않네

  이른 봄 갓 깨어난 개울물 같은 소리다.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다. 눈을 감은 채 나는 한참 동안 청아한 소리에 빠져든다. 소리는 창밖 나뭇가지 사이사이를 지나 사방으로 흩어진다. 가냘프고도 애절한 울음 같기도, 나직이 조곤조곤 들려주는 노랫말 같기도 하다.

  어제, 그제도 있었을 소리가 아닌가. 한순간 느닷없는 깨달음처럼 오늘 문득 내게 날아든 느낌이다. 이 아침 새소리는 내 안의 단단하게 굳어진 것들을 천천히 쪼아대기 시작한다.

  학창시절 음악시간에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을 들은 기억이 있다. 내게는 지루할 뿐이었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흥미가 많지 않았고 자주 접할 수 없었던 장르라 낯설었던 모양이다. 2악장이 끝날 무렵 나오는 새소리만큼은 알아들을 수 있어 좋았다. 뿐만 아니라 평소 쉽게 볼 수 있는 새들이 떠올라 더 그랬다. 베토벤의 귀가 완전히 들리지 않을 때 작곡한 것이라 해서 놀라웠다. 그는 창밖을 보다가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새라도 보았던 것일까. 돌연 주체할 수 없는 영감은 언젠가 들었던 새소리를 소환해 오기에 이르고 이를 단숨에 악보에 담게 한 것일까.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리는 불후의 명곡을 낳았으니, 더 이상 듣지 못하는 그가 안타까우면서도 고마웠다.

  한때 새를 동경한 때가 있었다. 새처럼 날고 싶었고, 소리를 흉내 내며 노래하고 싶었고, 처마 아래 새 집에서 알을 훔쳐내 본 적도 있었다. 새를 동경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새와 새소리를 표현한 예술 작품 또한 언뜻 떠올려도 여럿 되는 것 같다. 교과서를 통해 접했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가짓수도 그렇지만 장르도 다양하지 않았나 싶다. 

  일하면서 잔잔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찾을 때였다. 일상에서 접한 새소리를 담아 올린 영상들이 꽤 많다는 걸 알았다. 그만큼 새소리에 감동한 이들이 많다는 뜻으로 짐작이 간다.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새소리를 가만히 듣는다. 요동치는 마음을 잔잔하게 할 뿐 아니라 잠든 영혼을 깨우고 일으켜 세울만한 힘이 분명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 우리 집은 자연의 일부분 같았다. 뒤쪽으로 낮은 산이 있었고 앞으로는 못둑과 그 아래 제법 큰 저수지가 펼쳐져 있었다. 처음부터 그들과 함께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다정해 보였다. 나는 그곳에서 들을 수 있었던 소리와 함께 자랐다. 한겨울 밤, 흙 마당에 오줌이 꽃처럼 번져갈 때쯤 바람소리에 실려 오던 뒷산 부엉이 소리는 무섭고도 신비로웠다. 화르르 마당으로 몰려왔다가는 떼로 날아가던 참새는 날갯짓 소리마저 귀여웠다. 하악~ 입김이 뿜어져 나오던 겨울 아침, 담 곁에 서 있던 오동나무에 까치가 찾아들 때면 반가운 손님이 오려나, 기분이 좋아지는 엄마였다. 그런 엄마를 보며 덩달아 설렜던 아침이 있었다. 고니와 오리 떼는 겨울 한철 날아들어 집 앞 저수지를 수놓았다. 

  그 중 내가 제일 좋아한 소리가 있었다. 늦잠을 잘 수 있었던 휴일, 그것도 아침, 오늘처럼 잠결에 들려오던 새소리였다. 이불 속에서 눈을 감은 채 귀만 열고 있으면 바지런한 새들은 게으른 나에게 사랑스런 지저귐으로 쉴 새 없이 아침을 물어다 주었다. 부모님은 농사일에 바빠 오 남매나 되는 우리를 알뜰살뜰 다독일 만한 여유가 없어 보였다. 잠결인지 꿈결인지 들려오던 아침 새소리만으로도 그 순간 나는 가득 채워지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언젠가 동물원에서였다. 내내 잊히지 않는 장면 하나가 있다. 한쪽에 유독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었기에 가까이 가보게 되었다. 다 가기도 전 부드럽고도 우아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는데 누가 들어도 반할만 한 소리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새장 속에 갇힌 새소리였다. 이름이 가물거린다. 갇혔어도 소리는 갇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 새는 알고 있다는 듯 생기까지 있어 보였다. 갇히지 않았어도 갇힌 듯 점점 생기를 잃어갈 때가 있지 않던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마여 앤젤루의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에는 인종과 여성 그리고 가난이라는 것에 갇힌 새를 만날 수 있다. 자전적 소설의 주인공인 새는 바로 그녀인 것이다. 그녀는 철저하게 갇혀서 철망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노래하는 것뿐이었다. 슬프고도 애절한 노래는 촘촘한 망을 빠져나가 언덕에 다다르고 사방으로 번져가게 된다. 갖은 시련이 순간순간 그녀를 가두려 했지만 끝내 갇히지 않았으며 수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서 지금까지도 훨훨 날아다니고 있음을 보게 된다.

  갇힌다는 건 무엇일까. 육체가 갇힌다고 해서 갇혔다고 할 수 있을까. 그 옛날 평안으로 이끌던 새소리가 한동안 내게 들리지 않았던 때를 돌아본다.  아무리 오르려 몸부림쳐도 하늘에 닿지 못하고, 아무리 멀리가려 안간힘을 다해도 세상 끝에 닿지 못하는 창공의 새처럼. 자신을 가두고 마는 새장이란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함에서 비롯된 욕망의 다른 이름인가 싶다. 

  새는 새장에 갇히지 않아서 자유롭다기보다 소리를 내는 그 자체가 자유인 건 아니었을까. 울음도 노래도 아닌 그만의 소리를 내는 새다. 새장 속이든 밖이든 그냥 새인 채로 자유를 누렸을지도…

  오랜만에 느긋한 아침. 평안에 깃드는 중이다. 안도 밖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그저 나인 채로. 새소리를 따라간다. 내 안에 단단하게 굳어진 것들이 하나씩, 둘씩 비늘처럼 떨어져 나간다. 새소리가 내어준 이 길 끝에 다다를 즈음이면 내 영혼이 반짝, 하고 날아오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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