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은 춥고 며칠은 비가 오더니 이러려고 그랬나. 아기의 눈꺼풀 같은 벚꽃 잎 위로 봄볕 하얗게 물들고 우리의 얼굴도 유년의 언젠가 아빠와 엄마를 바라보았듯 하염없어지는데. 찰나 같은 봄. 그것을 또 찰나 같은 사진으로 남기면서 어쩌면 찰나의 다른 말은 영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습득한다. 길을 걷다가 애인에게 꽃이 벌써 지려고 해, 했더니 오 시 쓰는 거야? 되묻길래, 아니 사실을 말하는 건데? 웃었다.
사월엔 시를 써야지. 그렇게 생각했던 때도 물론 있었지. 아파트 사는 사람도 반지하 사는 사람도 사월엔 왠지 밖으로 뛰쳐나와 온몸으로 부닺치는 애감이란 게 느껴져서 사월엔 시를 많이 썼었지. 그래 저런 게 사랑이지. 저런 게 애정이고. 저런 게 인간들이 할 일이지. 싶었던 날들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벚꽃은 더 빠르고 더 힘차게 흩어지고 있던 때, 나는 주머니에서 꺼냈던 볼펜과 수첩을 다시 슬그머니 집어넣었지. 아마 그러고도 시인이 될 순 없었으니까.
봄엔 누가 죽었다는 소식이 뜸해서 우리 다 안심하게 되는 것 같다. 내 맘 속의 시인을 죽이고 일어섰던 그날에도, 그래서 나만 슬픈 줄 알고 혼자 술을 들이켰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좀 다르게 생각하고 있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함부로 힘들다는 걸 말하지 말래. 함부로 슬퍼하지도 말래. 힘들고 슬픈 일에도 순위가 있대. 그래서 그런 일에도 줄을 세우는 우리의 얼굴이 너무 혐오스럽지 않아? 내가 되물었고 아직 답을 듣진 못했어. 아마 평생 못 들을 거야. 죽었거든. 난 그냥 아주 가끔 그 사람의 시를 읽어. 그리고 예비할 뿐이야. 사월 다음의 것을.
못생긴 골목을 돌아 나오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빗물이 전설처럼 고여 있다. 그 위에 서서 일그러지는 얼굴을 하염없이 보고 있다. 그러면 빗물 속 그 얼굴도 나를 하염없이 올려다본다. 너에게 난 벚꽃? 아니면 어떤 죄. 알 수 없단 표정을 따라 짓는 너를 보며 더 이상은 이 세상을 헤쳐나갈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사월엔 그저 너도 나도 우리 모조리 지우고 바로 서는 수밖에.
온몸이 뜨겁다. 겉옷을 벗기도 전에 봄은 가겠지. 난 그냥 그리워할래. 그게 좀 더 시인에게서 멀어지는 일 같아. 친구야. 애인아. 엄마야. 부를 이름은 많은데 난 점점 더 외로워진다. 조금만 움직여도 저 벚꽃 잎들이 한꺼번에 쏟아질 것 같다. 고개를 저을 수도 없이 고정되는 이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