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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미숙 Nov 01. 2020

첫 스승

1973

나의 최종학력이 초등학교 5학년일 뻔했던 적이 있다.

아버지의 가출로 가족 속에 아버지가 부재했던 시기였다.

엄마가 시금치 밭이나 토마토 밭에 가서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리고 있었고 어린 동생들은 온전히 나의 손에 맡겨졌다. 

그 무렵, 나는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아침이면 어린 동생을 업고 있던 나의 귀 머리에 동네 아이들이 학교 가는 재잘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학교에 가고 싶었다.

짝꿍 남자아이의 짓궂은 장난이, 쉬는 시간이면 친구들과 고무줄놀이하던 운동장이, 조금 엄격해 보이시던 선생님이 보고 싶었다. 

5학년 때 선생님은 중년의 여선생님이었다.

리본을 매는 물방울무늬 블라우스 즐겨 입었다. 쌍꺼풀의 눈이 유난히 컸다.

눈을 부릅뜨고 떠드는 아이들을 향해 소리를 지를 때면 무서워 저절로 눈이 부릅 떠졌다.

나는 아주 평범하고 가난한 집 아이로 별로 관심받지 못하는 키 작은 아이였다.

7~80명이 콩나물시루처럼 옴닥옴닥 모인 아이들을 선생님도 공평히 관심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겨울 초입에, 집 나갔던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보자기에 종이돈과 동전을 하나 가득 싸가지고,

그리고 ‘감귤’을 사 오셨다. 귤을 난생처음 먹어 본 날이다.

4남매는 껍질을 까면 여러 개 붙어 있는 알맹이를 하나씩 떼어 사탕처럼 오물거렸다.

그 맛보다도 학교에 다시 갈 수 있게 된 게 좋았다.

학교에 다시 가는 날,

앞서거니 뒤서거니 엄마와 함께 천변 길을 따라 학교를 향해 걸었다.

교문으로 들어서자, 너른 하얀 운동장이 나를 듬뿍 안아주는 듯했다.

난쟁이처럼 작은 정오의 그림자는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엄마와 나를 놓칠세라 부지런히 따라왔다.

학교 건물 정 가운데에 있는 교무실을 거쳐 간단한 상담을 한 후 교실로 향했다.

수업 중이던 선생님은 이내 교실 밖에 서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이고, 〇〇이 아냐? 정말 〇〇이가 왔네!”
나는 참기 힘든 눈물을 삼키느라 물방울무늬 블라우스에 검정치마를 입은 선생님의 실루엣만 겨우 볼 수 있었다.

초겨울 바람에 발그레해진 내 얼굴을 감싸며 연신 "잘 왔다, 잘 왔어!"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때부터 나는 공부를 아주 잘하고 싶어 하는 아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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