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모다 Oct 30. 2023

별난 게 없어서 좋아

보통사람들의 결혼식을 보고


  

오래 자녀문제로 힘들어하시던 언니뻘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아들 청첩장 보냅니다!      


요즘은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 비혼도 일상이고 만혼도 흔한 일이지만 그래도 자식 가진 부모 마음에 자녀의 결혼은 큰 숙제 중의 하나다. 나이가 한참 들어서도 사회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아들 때문에 늘 걱정하시며 마음의 돌덩어리 하나 안고 사시는 분이셨는데 살인더위통에 만나지도 못하고 내내 연락도 못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느닷없이 청첩장이 날아왔다. 

     

예년보다 길어진 가을날이 절정을 치닫고 있는 주말에 아는 언니는 고옵게 가을하늘처럼 곱고 파아란 한복차림에 더없이 행복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하객들을 맞이하셨다. 그나저나 코로나 기간 동안에 결혼식 참석은 거의 못하고 있었는데 결혼식에 가보고서야 일상의 귀환을 절감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북적이는 사람들로 활기를 느낄 수 있었다. 결혼식을 끝내고 찾은 공원에서도 인파는 말이 아니었다. 듣자 하니 공연장, 행사장등에서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하니 그동안 사람들이 얼마나 얼굴을 대하는 행사에 굶주렸나 싶다. 정말 다행이다. 이리 귀한 결혼식에 사람들이 많이 참석해서 축하해줄 수 있어서!! 

     

나는 결혼식장 뒤쪽 구석에 앉아서 앞쪽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음악이었다. 결혼식이면 늘 연주되는 단골 곡 대신에 커다란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와 몇 가지 악기로 연주되는 재즈음악이 결혼식 전과 과정 그리고 그 이후를 이끌었다. 뭔가 색다른 요즘 세대 풍속도로 보였다. 신랑이 먼저 입장해서 신부아버지에게서 신부를 건네받는 전통방식대신 신나는 음악과 함께 신랑 신부가 손을 맞잡고 힘차게 행진하는 방식은 이제 아예 흔한 모습이다. 엄숙한 모습은 저리 가라 하며 따로 주례도 없고 젊은 진행자의 멘트에 따라 군더더기 없이 그러나 하나하나 꼭 필요한 순서로 채워지는 결혼식이었다.   

   

신랑신부의 다짐, 신랑아버지의 덕담, 신부 측 동생의 축하편지, 그리고 신랑 쪽 가족의 축가, 그리고 양가부모님과 하객에 대한 인사로 간략하지만 뭉클한 순서들로 이루어졌다. 나는 신랑어머니의 그동안의 고뇌를 옆에서 보아왔기에 느낌이 더 달랐는지도 모른다. 생뚱맞게 유명세를 타는 유명한 사람들의 축가도, 연주자의 기량을 은근히 자랑하는 멋진 연주도, 어려운 미사여구로 길어지는 주례도, 화려한 이벤트도 없었다. 덕담도 그저 평범한 아버지가 아들과 며느리에게 건네는 따듯한 인사 말뿐이었고 동생이 누나에게 직접 쓴 편지도 그저 일상에서 우리가 주고받는 말들이었다. 축가로 말할 것 같으면 날것 그대로의 박자도 음정도 불안한 노래였다. 무엇하나 별난 것이 없었다. 그런데 마음으로 눈물이 났다.   

   

자녀를 낳고 키워 훌훌 품을 떠나보내는 부모는 모두 훌륭하다. 고이고이 키운 과정에 어느 가정이나 쉽기만 했겠나. 각자의 이야기를 안고 각자의 눈물과 한숨을 안고 새로운 출발 앞에 떨며 화알짝 웃는 그들이 존경스러웠다. 별난 것이 없는 보통사람들 그들은 모두 위대해 보였다. 견뎌준 부모도, 함께 일어난 자녀도 다 고마웠다.

      

늘 꽃길만은 아니랍니다. 

그래도 두 손 잡고 예쁘게 살아주세요. 

지금까지 걸어온 길 고마워요. 

축하합니다.     

 




지독하게 힘들었던 여름을 통과했습니다. 

비록 내년은 더 더울 거라 다들 걱정하지만

올 가을은 예년보다 더 길게 선물처럼 다가왔습니다. 


힘든 계절을 견딘 것처럼 

우리의 하루하루도 견뎌야 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맛없는 빵부스러기 같은 하루하루라도

견디다 보면 

이 가을 같은 선물 하나 받는 날도 오겠지요. 


별난 게 없는 

보통사람들을 응원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