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연코 최악의 커피 플레이스는 공항이다.
급히 싼 짐을 엄마 차에 실었다. 애석하게도 코로나19가 공항버스마저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주말에는 단 한대도 다니지 않는다니. 30분에 한 대이던 공항버스가 완전히 사라졌다. 여행객이 사라졌으니까.
2020년 11월 22일, 프놈펜에서 한국으로 돌아왔었다. 출국일은 2021년 11월 21일. 어쩜 딱 1년 만에 다시 프놈펜에 가게 되었는지 신비롭게 느껴졌다. 귀국하고 벌써 1년이나 지났다니, 믿기 어렵네. 나는 뭔가 새로이 한 게 없는데.
일 년만의 공항이었지만, 공항 가는 길의 설렘은 여전히 없다. 그 두근거림을 이제는 기억하지 못한다.
공항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적막하다. 이제 해외 입국자의 자가격리를 생략하는 국가가 하나 둘 나오고 있지만 완전한 회복까지는 오랜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 셀프 체크인을 하고 짐을 부쳤다. 다행히 아직 모닝캄이 유지되고 있어서 짐 두 개를 부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비행으로 모닝캄 연장 조건이 채워진다. 짐 두 개를 부칠 수 있다는 것 이외에 별 메리트를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도 아니지만.
짐을 부치고 출국 심사대를 지났다. 이번에 새 여권을 발급받으면서 자동출입국 심사를 위한 사전 등록을 해야 하는 건지, 확실하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자동으로 등록된다는 것 같다. 자동출입국 심사대에서 여권을 스캔하고, 지문을 찍고, 안면 인식을 기다렸다. 마스크 벗는 것을 까먹고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고 있다가 안면 인식에 실패해서 여권 판독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엄마는 늘 퇴근한 나에게 집에 오면 마스크부터 좀 벗으라고 잔소리를 했었다. 그때까지는 내가 마스크에 적응했다는 생각에는 미치지 못했었는데, 자동출입국 심사대에서 반려를 당하고 나니 그간의 변화가 느껴졌다. 나는 '마스크 쓴 얼굴'을 내 얼굴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카메라에 비춘 마스크 쓴 내 모습에 어떤 위화감도 느끼지 못하였다.
출국 심사대를 통과하고 나면, 그제야 정말 공항에 들어섰다는 기분이 든다. 물론 그 기분은 잠시이고, 발길은 바로 면세품 인도장으로 향하지만 말이다. 피크 시간대에는 20~30분 까지도 기다려야 했었는데, 이제는 인도장에도 사람이 없다.
이번 출국 면세 쇼핑에서는 투미 숄더백을 하나 샀다. 입사하고 나서 몇 개월 지나지 않아 투미 알파 브라보 라인의 백팩을 하나 장만했었다. 가진 백팩이 너무 대학생스럽기도 했고, 노트북을 항상 소지해야 하다 보니 어깨가 쉽게 피로해졌다. 노트북 넣어 매고 다니기 편안한 직장인 백팩으로 내 눈에 들어왔던 것이 투미 알파 브라보 녹스(Alpha Bravo Knox)였다. 살 당시에는 흔히들 매는 가방인 줄 몰랐다. 잘 안 보이다가도 특히 공항만 오면 그렇게 흔하다. 체크인 줄에서 내 앞 뒤로 다 나와 같은 가방인 적도 있었다. (민망) 그럼에도 벌써 만 5년째 매일 같이 매고 있다. 가방 자체의 무게가 꽤 나가는데 어깨끈이 그 무게를 상쇄해줄 정도로 편안하다.
5살 녹스가 아직도 제구실을 잘하고 있지만, 새 가방을 하나 장만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녹스 자체가 쓸데없이 무겁기도 하고, 백팩만 매고 다니니 복장도 뭔가 백팩에 맞추어 고르게 되기도 하고. 음. 그냥 내 변덕 때문이라고 하자. 그래서 새로 골라본 가방은 프라다 재질의 숄더백인 쉐릴 비즈니스 스몰 토트(Sheryl Business Small Tote)이다. 너무 브리프 케이스 같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서류 가방 느낌이 강하지는 않았다. 다만 내 노트북(13인치)이 겨우 겨우 들어간다. 스몰이긴 스몰이구나.. 오래 잘 지내보자.
면세품 픽업을 하고 나서는 스타벅스로 직행했다.
나는 비행기에서 자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되도록 피곤한 몸으로 도착해야 시차 적응을 빠르게 할 수 있기도 하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기 전에는 늘 커피를 사 마시는 편이다. 무조건적으로 찾지만 틀림없이 실망하는 것 또한 공항 커피. 공항 커피는 비싸고 맛도 없다.
유일하게 맛있게 마셨던 공항 커피는 아부다비 공항의 Lavazza의 라떼였다. 아부다비에서는 환승 터미널과 아무리 멀더라도 라바짜에 꼭 들러서 라떼를 한 잔 마신다. 공항이라는 절망적 커피 세계관 속에서 실크 폼 라떼를 만나는 것은 기적이지. 사막의 오아시스만큼은 아니더라도 내 마음 촉촉해지기에 충분하다. 또 내 마음을 부풀리는 공항이라면 프랑스 파리 샤를 드골 공항도 있다. 라뒤레에서 마카롱을 몇 알 사서 스타벅스에서 죽치고 있는 것이 나의 기쁨! 막간의 그 행복은 말로 못한다. 그 이외의 공항 카페 경험은 모두 숙연한 것이었다. 기분을 잡치고 싶다면 공항에서 따뜻한 라떼를 주문해보시길. 그렇지만 나는 희망 품기와 기분 잡치기를 멈추지 못하고, 이날도 커피를 사 마셨다.
너를 향한 나의 사랑과 증오 또한 내 변덕 때문이라고 하자. 너의 맛은 변함없이 일정하니까.
만 1년 만의 비행이라 볼 영화가 많겠지? 기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엔 의외로 구하기 어려운 영화들이 등장하곤 한다. 재밌는 유럽 영화 한 편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탑승을 기다리는데 이제야 두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