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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열무호두 Jul 01. 2019

채식 후에 달라진 것들(2)

체중과 사이즈가 줄었다

나는 몸무게 2.5킬로의 저체중아로 태어났다. 엄마가 나를 가졌을 때 입덧도 심했고, 젊은 시절 가난했던 우리 부모님은 지방에서 서울로 이불 두채만 가지고 올라와서 단칸방에 살았다고 했다. 내가 아주 작게 태어난 것은 엄마가 임신 중에도 제대로 된 영양 보충을 하지 못했던 탓이었다.  

하지만 나는 태어나자마자 먹을 것을 찾아서 입술을 옴찔옴찔 거리며 울었다고 했다. 엄마의 모유를 미친 듯이 빨아들여 나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세 살도 안된 아기가 부추전을 부치자마자 싹 쓸어 먹었다고 한다. 지금도 엄마는 내가 얼마나 잘 먹는 아기였는지 흐뭇한 표정으로 말하곤 한다.

하지만 그 2.5 킬로의 저체중아는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나서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이미 60킬로그램이 넘는 소녀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고3 때는 몸무게가 70킬로그램을 넘어갔다.

고3이라서 잘 먹어야 한다는 이유로 엄마는 하루에 도시락을 두 번을 싸주었다. 두 개가 아니라, 두 번이다.

하나는 아침에 싸주고, 하나는 저녁 시간에 직접 학교로 가져다주었다. (급식이 시행되지 않았던 아주 옛날의 이야기다. 나는 90년대에 고등학교에 다녔다.) 어쨌든 너무나 크나큰 사랑이었다. 아직도 보답을 못하고 있다... 자식한테 잘해줘 봤자, 다 소용없다...

엄마는 그 도시락에 내 얼굴만 한 돈가스를 튀겨서 두 장이나 넣어주었다. 그리고 흰쌀밥. 그렇게 먹고 난 이후에는 독서실에 가서 컵라면을 먹었다. 아침에는 얼굴이 부어서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수능을 몇 달 남겨두지 않고 나는 통풍에 걸렸다. 바람만 스쳐도 얼굴이 아팠다. 

대학 가면 빠진다는 살은 빠지지 않았다. 원푸드 다이어트, 단식 다이어트 등등등..  안해본 다이어트가 없었다. 이십 대 중반이 되어서야 피나는 노력으로 60킬로대 초반으로 안착했다. 내 키는 165센티미터다. 몇 년이 지나  노력 끝에 오십 킬로 대 후반의 몸무게가 되었지만, 내 인생은 뚱뚱하거나 통통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작년 여름, 채식을 시작했을 때의 나의 몸무게는 165센티미터에 57킬로였다. 표준 체중의 범위에 드는 지극히 정상적인 체중이다. 하지만 바지를 입을 땐 배 부분이  불편했고, 옷태가 좀 더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하지만 나는 57킬로 밑으로 내려가 본 적이 없었다. 문화센터의 요가수업을 5년째 듣고 있었고, 많이 먹지도 않았다. 하지만 체중은 요지부동이었다. 하루에 두 시간씩 걷기도 했지만 몸무게와는 별 상관이 없었다.

원래 이렇게 생겨 먹은 몸인가 보다 하면서 적당히 만족하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현미 채식을 시작한 후 두 달쯤 지났을 때, 내 몸무게는 52.6킬로가 되어 있었다. 남들이 들으면 고작 두 달에 4킬로 빠진 것 가지고 뭘 그렇게 호들갑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사십 년 조금 넘는 인생을 통틀어 한 번도 그런 몸무게에 도달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엄청난 변화였다. 절대로 뚫릴 것 같지 않았던 마의 벽을 뚫은 느낌이랄까.


몸무게는 일주일에 0.5킬로 정도씩 아주 야금야금 빠졌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변화는 좀 더 선명했다. 체중은 4킬로가 빠졌지만, 사이즈가 줄었다. 나의 허벅지 둘레는 보통 52~3 정도였는데, 채식 후 49cm로 4센티가 줄었다. 그리고 허리사이즈는 27인치에서 25인치로 2인치가 줄었다.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그때 나는 음식을 배불리 먹었다는 사실이었다. 끼니마다 현미밥 한 공기에 야채, 과일. 어떤 날은 감자도 쪄서 먹고, 두부를 듬뿍 넣어 찌개도 끓여먹었다. 음식량을 제한하지 않았다. 바나나가 먹고 싶으면 바나나를 많이 먹었다. 옥수수가 많이 나오는 철에는 옥수수를 먹었다. 달콤한 것을 먹고 싶을 때는  고구마나 단호박을 오븐에 구워 먹었다. 자연의 달콤한 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제철 음식이 가장 저렴하고 맛있다. 하지만 내가 먹지 않은 것은 고기, 우유, 계란, 생선과 가공식품이었다.  그 네 가지만 피하고 다른 음식들은 배가 부를 때까지 먹었다. 이걸 미국에서는 WFPB (whole food plant based diet)라고 부른다.

블루베리를 곁들인 오븐에 구운 단호박.

나는 몸무게가 정상체중 범위여서 그렇게 많이 빠지지 않았지만, 과체중이었던 남편은 일주일에 3킬로가 빠졌다. 아침에 몸무게를 잴 때마다 0.5킬로씩 훅훅 빠지는 것을 보고 나도 놀랐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남편은 방학 기간에 나와 같은 식단으로 식사를 했던 것이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어 남편은 배가 나와 입지 못했던 재킷을 입고 신나게 출근했다.

지금은 남편은 집에서만 채식을 하고 바깥에서는 일반 음식을 먹는다. 거의 하루에 한 끼만 채식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그 정도도 하지 않았던 때보다 체중이 꽤 줄어들었다. 가끔은 치킨을 사 와서 혼자 먹기도 하는데, 나는 그 앞에서 과일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눈다. 육식을 좋아하는 남편이 고기를 먹지 못해 괴로워하는 것보다 이런 식으로 공존하는 것이 낫다. 남편이 채식으로 더 건강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나의 욕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남편은 이제 채식으로 찌개도 뚝딱 맛있게 끓여낸다. 


남편이 끓인 채식 고추장 찌개.  맛이 훌륭하다.


요즘은 날씬한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나 정도는 그 축에 끼지도 못할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도 왠지 민망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고, 내 예전의 모습과만 비교하고 싶다. 사람들은 모두 체형도 다르고, 체질도 다르다. 그리고 통통해도 뽀송하니 예쁜 사람이 있고, 말랐어도 볼품없는 사람이 있다. 날씬한 것이 모두 능사는 아니다. 체형도 서로 모두가 다르다. 하지만 개개인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몸상태와 컨디션은 있는 것 같다. 나 자신이 갖고 태어난 것을 가장 좋게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채식을 시작한 지 일 년 여가 지난 지금은 53킬로 정도의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  떡이나 빵 같은 가공식품류를 좀 많이 먹으면 올라갔다가, 그걸 좀 줄이고 과일이나 야채를 많이 먹으면 다시 내려온다.

어쨋든, 그동안 절대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여분의 군살이 채식을 시작하고 나서 빠졌다는 것은 나에게는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며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채식은 나에게 새로운 기회의 창을 열어준 느낌이다. 나는 채식을 하기 전에는 두 세 개 밖에 하지 못했던 정자세 푸쉬업을 지금은 하루에 백 개 정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푸쉬업을 하게 된 계기와 과정에 대해서는 언젠가 쓰려고 준비중이다. 


다음 편에는 채식을 했는데도 살이 빠지지 않는 이유와 채식 할 때 조심해야 할 점에 대해서 써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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