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민트티와 사랑이 깊어졌을까
<히>
사는 동안 나는 민트향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치약 냄새 같고, 인공적이고, 차가운 느낌이 싫었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도 민트 초코 향이 조금만 나도 고개를 돌렸다.
그런 내가 모로코 마라케시에 도착 첫날, 식당엘 갔더니
사람들 모두 테이블 위에 은빛주전자와 함께 민트티가 떡 하니 놓여있는게 아닌가.
민트티는 모로코의 국민차였던 것이다.
나도 민트티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모로코 땅에 온 이상 민트향을 피해다닐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조심스레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내가 알고 있던 그 민트의 향이 아니었다.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럽고,
녹차의 은은한 쌉싸름함 사이로(보통 민트티는 민트잎만을 우려내는데
'모로칸 민트티'는 녹차와 민트를 혼합한다고 한다)
청량한 민트향이 시원하게 번지는 맛이 뜻밖에도 너무 좋은 게 아닌가.
그날 이후로,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민트티를 마신다.
그리고 채 며칠 되지도 않았건만 점점 동화되어가는 나를 느낀다.
이 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모로코의 공기와 햇살이 담긴,
그리고 하루를 시작하는 모로코인들의 리듬같은 것임을.
민트티는 모로코 음식의 향신료와도 이상하게 잘 어울렸다.
마치 찐하게 농축된 에스프레소 한잔의 뒷 여운처럼,
타진(모로코 전통음식)을 먹은 후, 청량한 민트티 한 모금이면
입안이 깔끔해지고 속도 편해졌다.
숙소에서 서양식 아침을 차려먹을 때도,
커피 대신 민트티에 손이 가는 나 자신이 신기했다.
늘 커피 없이는 하루를 시작할 수 없던 내가 말이다.
그러던 어느날, 마라케시에서 카사블랑카로 도착한 날 오후부터 갑자기 배탈이 났다.
밤새 설사에다 배가 뒤틀리는 강도가 심상치 않은 것이 장염같았다.
외국 여행 나와서 아프면 참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그 옛날, 20여년전에 남미 여행중에 칠레에서
장염으로 새벽에 응급실에 실려갔던
끔찍한 기억이 나며 두려웠다.
다행히 어찌어찌 아침이 밝았는데 이번엔 배 아픈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이 (미음 외에는) 없다.
그때 문득 생각났다.
민트가 소화와 장에 좋다는 말.
마침 말린 민트 잎을 사놓은 게 있어서 미지근한 물에 민트차를 우려냈다.
그리고 한모금 입에 대는 순간 그 부드러운 향이 다시 내 몸을 감싸며, 묘하게 안도감이 밀려왔다.
이 낯선 땅에서 나를 위로해주는 게 민트티라니.
참 신기했다.
이제는 민트향이 낯설지 않다.
오히려 따뜻하고 편안한 향으로 기억될 것 같다.
이제라도 민트의 진짜 얼굴을 알게 되서 다행이다.
그러니 참, 세상은 넓고 배울 것은 계속된다.^^
18일간의 모로코 여행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사랑이 속삭이는 도시' 카사블랑카에서
어쩌다 민트티와 사랑이 더욱 깊어졌을까.^^
덧)
카사블랑카에서의 장염(추정)은 꼬박 3일 걸려 회복됐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