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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꾹꿍 Feb 15. 2016

사는게 지겹지?

니체의 영원회귀

       

내가 아는 언니가 이런 말을 했다.


사느게 지겹지 않니?       


매일 매일 똑같은 일상, 아무런 꿈도 새로울 것도 없는 일상.      


왜? 매일 반복되니까. 아주 큰 사건들을 기점으로 다시 또 일상을 만들어 낸다. 원을 돌 듯 나는 비슷한 장소를 왔다 갔다하고 같은 사람들을 반복적으로 만난다.      


사후세계에 대해 대략 4가지 정도의 견해들이 있다. 1. (아무것도 없다.) 2. 영원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의 사후관으로 죽은 뒤에 천국 또는 지옥의 삶이 있다는 것)

3. 반복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 그리고 마지막으로 4. 반복은 반복인데 동일한 반복.

니체의 영원회귀설이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중)     


니체가 말한 영원회귀에 따르면 죽음 이후에는 새로운 삶이 아닌 내가 살아왔던 삶을 정확히 다시 반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반복은 무.한.반.복 이라는 점!    

니체의 영원회귀. 만약 그렇다면 얼마나 더 지루해질까. 지금 반복한 것들을 다시 계속 반복하게 된다면.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시작부터가 니체의 영원회귀설로 인한 인생의 묵직함에 대한 언급이 있다.      


‘영원회귀의 세상에서는 몸짓 하나하나가 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을 떠 맡는다.

묵직함은 진정 끔찍한 것이고, 가벼움은 아름다운 것일까?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의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반면 짐이 완전히 없다면 인간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서 기껏해야 반쯤만 생생하고 그의 움직임은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 그렇다면 무엇을 택할까? 묵직함? 아니면 가벼움? 모든 모순 중에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한 모순이다.‘(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니체가 이렇게 끔찍한 사후관을 우리에게 제시한 이유는 영원회귀의 개념이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니체의 영원회귀에서 중요한 것은 인생의 목표가 인생 전체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라는 것이다. 만약 지금 이 순간이 힘겹고 고통스럽다면 그 고통은 영원할 것이고 즐겁고 행복하다면 이 행복은 영원할 것이다. 내가 지금 소모해버리고 있는 이 순간은 내가 영원히 반복해야 하는 시간이다. (지대넗얕)     


이전에 소개한 영화 '리틀포레스트'의 이치코의 엄마는 이런 말을 했다.


뭔가 실패할 때마다 난 항상 같은 길로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열심히 산 거 같은데 같은 장소에서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돌아온 거 같아서 좌절했어. 그러나 경험을 쌓았으니 실패를 했든 성공을 했든 같은 일을 반복한 건 아닐 거야. ‘원’이 아니라 ‘나선’을 그렸다고 생각했어. 맞은 편에서 보면 같은 곳을 도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조금씩은 올라갔거나 내려갔을 거야. 그런 거면 조금 낫겠지. 

내가 그리는 원도 점점 부풀어 나선이 되고 있어.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힘이 나더구나.      

    

* 리틀포레스트 이전글



우리는 계속 반복하며 살고 있지만 사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월든'의 작가 소로우도 말했다. 계속 원의 중심에서 계속 반경을 그려나갈 수 있다고.      


'우리는 너무나도 철저하게 현재의 생활을 신봉하고 살면서 변화의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원의 중심에서 몇 개라도 반경을 그을 수 있듯이 길은 얼마든지 있다.'


* '월든' 이전 글    


난임을 겪으며 나는 나아가지 못하고 혼자 계속 다람쥐처럼 쳇바퀴를 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난임의 시간은 나에게 깊이있는 성찰의 기회를 주었고 머무르는 게 아니라 새로운 길을 나아갈 힘을 주었다. 아주 조금씩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고 있고 작은 하루하루가 나중에 생각지도 못한 반경을 그려나가고 새로운 삶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재미있는 사실은 앞에 소개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시작이 니체의 영원회귀설로 인한 인생의 묵직함이였는데 책의 마지막에서는 테레사의 개 '카레닌'을 비유하며 '반복은 행복이다' 라고 결론을 짓는다.


(개에게 하루하루는 반복의 연속이다.)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돌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간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이기에 인간이 행복할 수 없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이다.


반복되는 삶은 무료함과 권태를 주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인간은 '안정된 삶'을 꿈꾸며 살아간다. 어릴 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 학교를 다닐 때는 빨리 직장생활 하고 싶은 마음, 연애를 할 때는 결혼하고 싶은 마음. 그 모든 것은 불분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안정된 삶' 즉 반복을 갈구하는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순간의 행복을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진짜로 우리 삶이 무한반복하게 될지 아닐지 모르겠지만 목표를 달성하거나 어딘가에 도달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중요한 것은 순간을 어떻게 살아가는지이다. 그리고 반복되는 일상을 무시하면 안된다. 그 반복되는 일상의 원도 조금씩 움직이고 있으니까. 그리고 근본적으로 행복은 반복된 삶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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