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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꾹꿍 Apr 04. 2016

빨강과 파랑이 만나 보라를 이루기까지

리얼 그대로의 결혼 3탄


결혼은 과연 무엇일까?


일전에 쓴 리얼 그대로의 결혼 1,2 탄에 이어 3탄을 준비했다.




나는 결혼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빨강과 파랑이 만나 보라색을 이루는 것!


나의 경우 만약 친정식구들이 내 남편에 대해 아주 작은 흉이라도 보면 무조건적으로

아니야!!’ 라고 표정이 돌변하여 말한다. 동생은 말한다.

 ‘아주 매형 흉을 쪼끔만 봐도 난리네

흉이라고 해봤자 편식이 심하다는 둥, 사위가 애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둥 이러한 일상적이고 별거 아닌 것들이다.


나도 궁금했다. 결혼 6년차, 만났을 때부터 따지면 거의 10년차.

뭐가 그리 남편이 좋다고 아주 작은 흉이라도 들으면 이리도 난리를 치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원인을 알았다.


친정식구를 빨간 색이라고 해보자. 그리고 시댁식구를 파란색이라고 해보자.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빨강과 파랑이 대조적이다.

작년에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프랑스 내한 공연을 보았다. 자막이 나오는 스크린이 좌측에 붙어있는 바람에 눈이 왔다갔다 사시가 되는 줄 알았지만 아는 내용이기 때문이여서 좀 나았다. 로미오의 집안 몬태규는 파랑색, 줄리엣의 집안 카퓰렛 집안 사람들은 빨강색 복장이다. 서로 으르렁 거리는 원수 집안에서 연인이 탄생했다.


빨강색의 줄리엣과 파랑색의 로미오

그런데 내 생각엔 원수이든 아니든 결혼하는 연인으로부터 발생하는 두 집안의 만남은 원체 빨강파랑의 만남이다. 이질적일 수 밖에 없다.


똑같은 라면을 끓여먹어도 이 집에서 끓이는 맛이랑 저 집에서 끓이는 맛이 다르다. 반찬도 마찬가지. 그러하니 생활습관, 가치관 , 식습관 모든 것이 다르다.  


빨간색인 나와 파란색인 남편이 만나서 보라색을 이루었다. 그러나 나는 빨강에서 온 보라이고, 남편은 파랑에서 온 보라이다.


이것은 확연히 큰 차이가 있다.   

   

빨강끼리는 같은 크기의 사랑이 있다. 파랑끼리는 같은 크기의 사랑이 있다. 가족들끼리니까.

근데 결혼을 하면서 같은 색깔이 아닌 사람이 들어오게 된다.

파랑인 사위, 빨강인 며느리.

그리고 이 다른 색깔의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테두리에 묶인다. 같은 색이 아닌데 법적으로 가족이 되는 것이다.

sister-in-law , mother-in-law  즉 이제부터 법적으로 엄마가 되세요. 언니가 되세요. 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다른 색깔의 사람과는 같은 크기의 애정이 없다.

나는 우리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해. 나는 장모님을 어머니와 똑같이 생각해요.

이런 말은 죄송하지만

대부분 뻥이다

(진짜로 그렇게 되려면 많은 시간이 지나고 많이 부딪쳐서 미운 정,고운 정 다 쌓인 경우는 가능할 수도 있다.)

    

내가 내 남편에 대한 사랑의 크기와 우리 친정식구들이 남편에 대한 사랑의 크기는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

그건 당연하다.

만약 같은 빨간색인 나와 엄마가 내동생에 대해 흉보는 것은 괜찮다. 왜냐하면 대상에 대해 같은 크기의 사랑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편이 내 동생에 대해 흉보는 것은 기분이 나쁘다. 왜냐하면 남편은 나만큼 동생에 대한 애정이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예를 들어보자면,

남편의 누나. 나에게 시누이인 형님이 나에게 조금 상처가 되는 말을 했다.

나는 너무도 속상했다. 남편을 붙잡고 형님 땜에 기분이 상했다고 말했다. 남편이 보아도 누나가 잘못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지만 절대로 내 앞에서 누나 흉을 보지 않고 중립을 지켰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줘.

그리고 명절에 시댁에 갔는데 남편이 누나가 없는 자리에서 시댁식구들과 함께 누나 흉을 실컷 보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먼저 주체적으로.

그때 나는 아! 하고 깨달았다.


남편도 누나가 나에게 실수했다는 것을 알지만 같은 크기의 사랑이 전제되지 않는 나와 누나 흉을 보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애정도가 동일한 상태에서 흉보는 것은 괜찮다.

그런데 애정도가 동등하지 않은 상태에서 흉을 보게 되면 상당히 기분이 나쁘다. 남편이 나와 똑같이 내 동생에 대한 애정도가 있다면 얼마든지 흉을 봐도 괜찮다. 그러나 그렇지 않기에 작은 흉이라도 보면 날을 세우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 발견한 것은,

 아주 기쁜 일이나 아주 슬픈 일이 생기면 원래 original 색으로 돌아가 그들과 같은 감정을 느낀다. 예를 들면 엄마가 성대에 혹이 생겨 수술한 적이 있었다.

그 자체는 경미한 수술임에는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동생은 목이 막히는 슬픔을 느꼈다. 그러나 남편은 한 발짝 물러나 쿨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장모님 그만하길 다행이예요.’


빨강과 파랑의 만남. 둘은 보라를 이루고 각각의 가족들에게 보라를 물들인다. 서서히.

그래서 빨강도 보라를 받아들이고 파랑도 보라를 받아들이는 것.

'우리는 달라!!' 하면서 끝까지 거부하기 보다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물들어 가는 것.      


결혼이란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짓이긴 한 거 같다. 그래서 더욱 더 지혜가 필요하고 ‘사랑♡’이라는 강력한 접착제가 끊임없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 접착제가 느슨해지는 순간 색깔의 이질성이 치고 나와 결혼생활을 힘들게 할 수도 있다.


그러니 더욱 더 부부는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 가족의 중심은 '부부'이기 때문이다. 서로 사랑한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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