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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Oct 03. 2022

가스통은 없지만

인생의 첫 파업 이야기, 그것도 캐나다에서 4

(2022년) 8월 초 캐나다로 돌아온 이후 나름대로 트위터에서 온라인 시위를 한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현장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피켓팅(Picketing, 시위)을 하지 않은 점은 항상 마음에 걸렸다. 다른 사람들도 나가고 싶어서 나가는 것은 아닐 텐데 나만 집에서 편하게 있는 것이 불편했다. 그렇다고 쉽게 시위 현장에 나갈 수도 없었다. 주로 오타와나 토론토에서 시위가 있었지만 거기까지 운전해서 갈 차도 없었고, 아이들도 방학 중이라 집에서 애들도 봐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8월 23일 드디어 시위에 참가할 기회가 생겼다. 회사는 파업이 시작되자 한 컨설팅 회사를 통해 엘리베이터 검사를 대행시키고 있었는데 바로 그 회사의 사무실이 오타와에 있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 집에서 오타와까지는 왕복 4시간이 넘는 거리지만 마침 와이프가 차를 쓰지 않아도 되는 날이어서 큰 마음먹고 시위 현장에 다녀오기로 하였다. 파업이 시작된 이후 회사 사람들을 직접 만나 본 일이 없기 때문에 한 번 나가서 그동안 어떻게 상황이 돌아가고 있는지 듣고 싶은 마음도 컸다.


내 평생 시위를 하러 오타와 다운타운에 갈 줄이야!


그래서 시위 당일 아침 일찍 차를 몰고 오타와로 향했다. 평소 같으면 차가 막힐 시간이었는데 여름휴가 기간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차가 막히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시위 현장에서 가까이에 주차를 한 후 시위 현장으로 향했다. 사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곳(*)에서 4시간 동안 함께 시위를 할 생각을 하니 여간 곤욕스러운 것이 아니었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부끄러움을 무릎 쓰고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 비록 같은 회사 사람들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속한 보일러/압력용기 검사원은 없고 모두 엘리베이터나 연료(Fuel) 검사원들이라 대부분 얼굴조차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다행히 시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열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노조에서 나누어 준 티셔츠를 입고 시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다가가 '안녕 여러분!!'하고 인사를 하자 모두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대부분 오타와에 사는 사람들이었는데 내가 킹스턴에서 왔다고 하자 거기서부터 왔냐며 놀라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야기를 조금 들을 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내가 속해있는 보일러/압력용기 쪽 소식은 그 사람들도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이번 여름 한국에 갔을 때 마침 건설노조 형님들이 시위를 하는 현장을 지날 일이 있었다. 형님들은 머리에는 빨간 띠를 둘렀고 몸에는 빨간 조끼를 입었다. 그리고 뒤에 서있는 승합차에서는 민중가요가 아주 우렁차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단합된 모습인지!


그것에 비하면 캐나다의 시위는 참 별 것 없다. 주로 하는 일은 피켓을 들고 끊임없이 빙글빙글 도는 것이다. 때때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단을 나누어 주기도 하면서. 시위에 참여 한 인원이 많은 경우에는 노조 깃발도 휘날리고, 돌아가면서 마이크에 대고 연설을 하기도 하고, 노조 운동을 상징하는 '쥐' 풍선(*)이 등장하기도 한다.

(*) 미국과 캐나다의 시위 현장에는 종종 배신자(Scabby)라고 불리는  풍선이 등장하고는 한다. 역사가 깊은 녀석이지만 여기서는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경제 팟캐스트인 Planet Money Balloon Rats 에피소드 참고하시길 바람.


지난 9월 초 회사 본사에서 했던 시위 사진. 뒤로 '배신자' 쥐 풍선이 보인다.



이렇게 온순하게(?) 시위를 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남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물리적인 충돌이 발생할 경우 바로 경찰에 제지를 당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스통(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보기 힘들지만)이나 각목은커녕 만약 공공장소(도로나 공원)를 벗어나 사유지 안으로 들어가서 시위를 하거나 큰 소리를 낸다면 불법 시위가 되기 때문에 잘못하다가는 경찰에게 잡혀가기 십상이다.


뭐 캐나다라고 시위가 항상 평화로운 것만은 아니다. 우리같이 사람도 적고 모이기도 힘든 경우야 문제가 생길 경우 경찰이 쉽게 제압을 할 수도 있겠지만 노조원이 많고 단합이 잘되는 경우에는 회사 측과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기도 한다. 한 예로 내가 살았던 리자이나의 정유소에서 몇 년 전에 파업을 했는데 한 겨울에 노조원들이 공장 입구를 막아버렸다. 그래서 안에 갇힌 사람들은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먹을 것과 입을 것들도 헬리콥터로 배달해야 했다.


80년대 토론토(윗비)에서 벌어진 파업 현장 사진. 한 시위자가 현장으로 들어가려는 차를 막으려고 하고 있다. 우리도 저 정도 힘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과 몇 마디 이야기를 하고는 나도 본격적으로 시위에 들어갔다. 물론 내가 특별히 할 수 있는 것은 없어서 그저 피켓을 들고 건물 앞을 빙글빙글 돌았다. 가끔씩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 별로 할 이야기가 없어서 그저 빙글빙글 돌았다.


여름휴가 기간이라 그런지 오타와 다운타운 한복판이었지만 정말 사람이 적었다. 지나가는 차도 적었고 지나가는 사람도 적었다. 워낙 사람이 적어서 과연 이 건물 안에 우리의 분노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한 것인지 의심이 될 정도였지만 그런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파업이나 시위를 하다 보면 가끔씩 너무 깊게 생각하게 되는데 그러면 무엇인가 덧없어지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이럴 때는 차라리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


그래도 가끔씩 차들이 지나가면서 '빵빵'하고 경적을 울리며 호응을 해주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이 응원한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그나마 그것들이 조그마한 보람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보람이 있다고 한다면 영어로 배신자를 뜻하는 'Scab'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노조 주간 미팅을 할 때 '스캡'이 어쩌고 저쩌고 해서 저게 배신자를 말하는 것인가 싶기는 했지만 그래도 스펠링을 몰라서 찾아볼 수가 없었는데 누가 Scab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어서 좋은 단어를 하나 배울 수 있었다.


둥글게 둥글게 돌다가 이야기 조금 하고 다시 둥글게 둥글게 도는 것이 일이다



이날 시위는 10시부터 2시까지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중간에 배가 고플 만도 했지만 다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도록 밥 먹으러 갈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집으로 돌아갈 길도 먼데 이 사람들이 정말 2시까지 빙글빙글 돌 것인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혼자만 먼저 간다고 이야기 하기는 민망했는데 다행히 1시 30분 정도가 되자 시위의 리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하자고 했다. 참 듣기에 반가운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떠나는 길에 들으니 곧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도 시위를 할 일이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우리 동네에 엘리베이터 검사 몇몇이 예정되어 있는데 배신자(Scab)들이 검사를 하지 못하도록 그 앞에서 시위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나는 알겠다며 언제든 연락을 주라고 하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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