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조 Jan 12. 2024

20살, 암진단을 받았다.

첫 대장 내시경

'직장 부위의 조기암'


어? 내가? 왜? 아니, 그것보다 이제 20살인데?

검진받기 전 불안했지만 설마 했다. 그런데 설마가 사람 잡았다.


고등학생 때 수업이 끝나고 밤늦도록 야자까지 했으니 하루종일 앉아만 있던 게 화근이었을까?

스트레스가 쌓인다는 핑계로 빵과 아이스크림을 달고 살았던 게 문제였을까?

고3 끝나갈 무렵 간간히 통증 없는 혈변을 봤다. 치질도 아니었다. 처음엔 변비인가 싶었는데 몇 번 지속되니 슬슬 이상함이 감지돼서 엄마는 날 끌고 병원에 갔다.


"겉으로 봐선 치질도 없네요. 혈변이 있었다 하니 속을 봐야 해서 대장 내시경 해보겠습니다."


혈액검사, 심전도 검사 등등 사전검사를 마치고 일주일 뒤 대장 내시경을 했다. 수면으로 했는데 비몽사몽으로 깨어나자마자 회복실에서 간호사분께 들은 말은,

"혹시 해외 유학생활을 했나요?"였다.


왜 그런 걸 묻지? 왜 정상이라고 하지 않는 거지?


3cm가량 용종 하나가 나왔다. 지름이 3cm이면 부피로 치면 꽤나 큰 사이즈다. 용종이 나오면 무조건 조직검사로 들어간다고 한다. 결과는 일주일 뒤. 다시 병원에 가 결과를 들으러 기다리고 있는데 그 순간의 초조함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정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던 순간이었다.


드디어 내 차례. 대장 항문 전문병원으로 꽤 크고 유명한 병원이다. 내 진료를 봐주신 분은 원장님이셨는데 연세가 지긋해 보이시고 인상이 좋아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던 것 같다.


"직장 부위에서 3cm짜리 용종이 나왔어요. 조직검사를 했고, 그 결과는... (앞에 놓인 진단서에 진단명을 적으셨다.) 조기암입니다."

"네...?!"


오히려 나는 덤덤했다. 아니, 실감이 되지 않아 감각이 마비됐던 걸까. 옆에 계시던 엄마가 절망 섞인 목소리로 크게 놀라셨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일단 내시경으로 조직을 전부 떼어내서 외관상으로는 더 이상 없어요. 하지만 꽤나 깊이 있어서 많이 파냈고요, 그래서 혹시 림프선을 타고 다른 곳으로 전이 됐는지 확인해봐야 합니다. 오늘 CT 찍고 가세요."


맙소사. 일이 이렇게 커진다고? 살면서 이렇게 빨리 CT란 걸 찍게 될 줄은 몰랐다. 이런 건 드라마에서나 찍는 건 줄 알았는데. 검사는 빠르게 진행됐다. 바로 조영제를 맞고 누워서 커다란 통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다. 조영제 탓에 온몸이 뜨뜻해지고 소변이 마려운듯한 느낌이 썩 좋지 않았다.


그리고 CT검사 결과는 또다시 일주일 뒤.


"다행히 전이는 없어서 내시경으로 떼어낸 것으로 치료 다 됐네요. 천만다행입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이런 경우는 거의 논문감이긴 해요. 앞으로도 술은 정말 마시지 말아요."


아,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보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근 3주간의 검진 과정이 실감 됐다. 심장이 요동쳤다. 속이 좀 울렁거리기도 했던 것 같다.


어느덧 10년 전의 일이 됐다. 지금도 매년 5월이면 대장내시경과 CT촬영을 한다. 용종을 뗄 때도 있고 무사히 넘어갈 때도 있는데, 뗄 때마다 조직검사를 해보면 예후가 안 좋은 세포로 나온다. 그래도 매년 잘 없애고 있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검사가 끝나면 몇 주간은 건강한 식단으로 유지해야지 다짐하다가 또 흐지부지 된다. 배달음식, 외식, 인스턴트 가리지 않게 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불안하고 후회된다.


내 입맛이 문제지. 그러니 고치자.


인스턴트와 패스트푸드는 반드시 끊을 것이다.

안 먹고도 살 수 있는 것들이다.


그 여정을 풀어가 보려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