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과 질문
아이에게 질문을 한다고 해서 육아를 아주 잘하거나 열심히 하는 엄마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나는 자칭 '엄마 위주의 막장육아'를 펼쳐왔다. 단적인 예로 휴일에 아이들을 위해 체험학습을 가기보다 운동을 하기 위해 탁구장을 데려가거나 트레킹을 가고, 매 끼니는 5대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할 수 있도록 다채로운 요리를 만들기보다 5대 영양소를 한 번에 때려 넣은 국이나 카레 볶음밥 주먹밥으로 돌려 막는다. 비록 아이들을 살뜰하게 챙기고 잘 놀아주는 엄마는 아니지만 유일하게 잘한 것이 있다면 잠들기 전 그림책을 두, 세 권씩 읽어 주는 것이다. 첫째가 한돌 때부터 둘째가 6살이 된 지금까지 잠들기 전 책 읽는 계속되고 있다. 그 덕분에 첫째는 한글을 쉽게 뗐고 한글을 떼자마자 독립 책 읽기를 시작하더니 밥 먹을 때도 책을 잡고 있는 책순이가 되었다. 둘째 역시 한글을 모르지만 언니 옆에서 책을 읽고 잘 때가 되면 책을 골라와서 읽어주기 전에는 잠들기를 거부한다.
그림책은 질문으로 아이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매개체이다. 소아정신과 의사이자 이 시대 맘들의 육아 멘토 서천석은 <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이라는 책에서 아이를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그림책은 좋은 도구가 된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그림책을 가지고 아이들을 상담하기도 하고 엄마들에게 강연을 한다. 나 역시 질문이 많은 첫째의 질문이 짜증에서 호감으로 바뀐 계기가 그림책을 읽고 나서였는데 질문을 하는 아이의 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림책을 읽으면서도 첫째의 질문이 이어진다. 모르는 단어를 묻는 것부터 주인공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가 주된 질문이다. 첫째 아이가 유난스레 질문이 많은 이유는 호기심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불안이 많이 때문이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질문의 유형을 보면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질문들이 많다. 새로운 장소로 이동을 할 때는 질문이 폭발한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고 무엇을 해야 하고 엄마는 어떻게 언제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불안이 해소될 때까지 묻는다. 8살이 되었지만 정해진 루트 외에는 엄마와 분리되는 것을 불안해하는 아이를 위해 그림책으로 그 마음을 달래줄 때가 있다.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글 윤여림. 그림 안녕달)는 엄마가 잠시 보이지 않는 순간과 유치원을 가고 더 넓은 세상으로 가더라도 엄마와 아이는 언제나 다시 만난 다는 걸 따뜻하게 그린 그림책이다. 그림책을 읽으면서 첫째가 애기 때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해서 화장실도 못 간 이야기, 쓰레기를 버리러 가지 못한 이야기를 해주면 아이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번진다. 작은 아이가 읽어달라며 <싫어 싫어>(미레이유 달랑세) 가져왔길래 책을 읽어주며 유치원 생활을 물어본다. 너도 이 친구처럼 유치원을 가기 싫었어? 친구들이랑 노는 건 재미있어? 누구랑 놀아? 그 친구랑 뭐 하고 놀아? 등의 질문을 던지면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조금도 숨겨놓지 않고 종알종알 꺼내놓는다. 노래와 춤추는 걸 좋아하는 둘째는 아이러니하게 수줍음이 많다. 집에서는 음악만 나오면 춤을 추지만 유치원 발표회에 때에 무대에 서지 않으려고 해서 선생님과 긴밀한 작전을 통해 기적적으로 무대에 서게 했다. 그렇게 부끄러움이 많은 둘째는 인물 책 칼라스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어린 시절 뚱뚱하고 부끄러움 많은 칼라스가 무대에 서고 세계적인 성악가가 되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읽더니 자신도 가수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림책은 가끔 엄마에게 힐링이 되기도 한다. 아이를 무섭게 혼내고 죄책감에 끙끙 앓는 날 <망태할아버지가 온다>(박연철)을 펼친다. 무섭게 혼내는 엄마의 말을 최대한 생생하게 연기하며 세상에 더 무서운 엄마가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망태할아버지가 잡아간 사람은 아이가 아니라 엄마라는 뜨끔한 반전을 보며 반성도 하며 몇 차례 읽어 줬더니 아이들이 다시는 그 책을 가져오지 않는다.
매일 밤 책을 읽어준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후다닥 읽어주고 잠을 재우고 싶고 영혼 없이 읽어주는 날이 있는가 하면 어떤 날은 단 한 권도 읽어주기 싫은 날도 있다. 아이가 커갈수록 글밥은 또 어찌나 많은지 책 읽기도 벅찬데 질문까지 더해지면 잠은 언제 자냐고~ 책 읽기 중 아이의 질문에 가능한 단답형으로 답하다가 최근 새로운 재미가 생겼다. 아이가 8살, 6살이 되니 단순히 질문하고 답하는 걸 넘어서 삼자토론이 가능해진 것이다. 첫째가 질문을 하면 왜 그런지 둘째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첫째도 자기 생각을 이야기한다. 둘 다 이야기하고 나면 엄마의 생각이 어떤지를 묻는다. 신기하게도 두 딸아이의 생각이 다를 때가 많아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까지 이야기를 펼쳐가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읽어주는 게 아니라 서로의 다른 생각을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재미가 솔솔 하다.
아이의 깊은 속마음이 궁금하다면, 내 아이의 생각을 키우고 싶다면 하루에 한 권 그림책 읽기를 함께하는 건 어떨까.